한국일보

섣달 그믐날의 추억!

2019-01-29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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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주일 남았다. 오는 2월5일이 음력으로 1월1일 설이다. 설은 새해의 첫날이다. 정월은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이다. 그 첫째달 첫날을 ‘정월 초하루’라고 한다.

정월 초하루가 바로 우리 민족 최대명절인 설날인 것이다.

설에는 웃어른께 세배를 올린다. 어렸을 때는 세뱃돈을 받았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는 용돈을 드려야 하는 날이다. 이날은 떡국을 먹는다. 그래야 비로소 한 살을 더 먹는다는 풍습 때문이다. 설을 쇠는 것을 과세라고 한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는 설을 두 번 지냈다. 정부에서 양력 1월1일을 명절로 공식화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가정은 뿌리 깊은 전통을 따라 음력 1월1일을 설로 쇠었다. 양력은 신정, 음력은 구정이라 했다. 설을 쇰이 과세인만큼 이 때는 이중과세였던 셈이다.

현재는 양력 1월1일은 새해의 첫날이라는 의미만 갖고 있다. 음력 1월1일만이 설이다. 이미 신정, 구정이란 구별은 옛일이다. 설을 구정이라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설 자체가 음력기준이라 음력설이라 하는 것 역시 군더더기일 뿐이다.

‘정월, 동짓달, 섣달’
정월은 음력으로 새해 첫달이다. 그럼 동짓달과 섣달은 몇월인가?
24절기의 하나인 동지는 양력으로 12월22일 쯤이다. 음력으로는 11월 중에 들어있다. 이날은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이날부터 낮이 점점 길어진다. 때문에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싹튼다고 보아 새 해의 첫달로 잡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동지가 든 음력 11월이 바로 동짓달이다.

섣달은 ‘설이 드는 달’이란 뜻에서 유래됐다. 지금은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를 새해 첫날인 설로 쇠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음력 12월31일을 설로 지낸적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음력 12월을 설이 드는 의미에서 ‘섣달’이라 부른다. 설이 드는 설달이 섣달로 바뀐 것은 이틀+날이 이튿날로 변한 것과 같은 이치다.

섣달 그믐날.
섣달은 12월이고 그뭄날은 그 달의 마지막 날이니 이 날은 음력으로 그 해의 마지막 날’이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동요 가사에 나오 듯 ‘까치설날’이다. 설 바로 전날이 섣달 그믐날인 셈이다.

아주 오래전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면 설날보다 섣달 그믐날에 있었던 추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 날은 연중행사(?)로 목욕탕에 갔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던 공동목욕탕의 여탕 앞에서 머뭇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탕 안에서 동네 아줌마가 ‘다 큰 사내아이를 데리고 오면 어쩌냐’며 놀리던 목소리는 아직도 귓전을 맴도는 듯하다.
사는 형편이 넉넉치 않아 부엌에서 큰 다라(크고 넓은 그릇)를 놓고 묵은 때를 벗겨 낸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쯤에 잠을 자고 있어났더니 눈썹이 하얗게 변해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나중에야 짓궂은 어른들이 잠자고 있을 때 눈썹에 쌀가루를 하얗게 칠해놓고 ‘일찍 잠을 잤기 때문에 눈썹이 하얗게 변했다’고 놀린 것을 알았지만 당시 거울에 비친 하얀 눈썹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외에도 방, 다락, 마루 부엌, 화장실 등 이유도 모른채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친구들과 모여 있다가 잠자고 있는 친구 발가락 사이에 장난삼아 성냥으로 불침을 놓았던 기억들이 여전히 떠오른다.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겠지만 언제나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참으로 못 잊을 옛 추억들이다.

오는 2월5일은 설이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명절이다. 묵은해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써도 기어이 해는 바뀌어 새해가 오고야 만다. 온 집안을 밝혀도 밤은 온다. 잠을 자지 않고 뜬 눈으로 지새워도 그 밤은 지나고 만다. 어차피 그럴바에는 미국에서는 설이 연휴가 아닐지라도 섣달 그믐날인 까치 설날에는 가족들이 모여 하얗게 밤을 새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오붓한 밤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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