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은 자연일 뿐이다

2019-01-26 (토)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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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mountain). 산에만 가면 너무 좋다. 특히 겨울 산. 겨울산은 흰 눈이 함빡 내린 후에 가면 더 좋다. 가끔 겨울 노루들이 나와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 겨울 산의 경관. 흰 눈으로 덮인 겨울 산. 온 천지가 하얀 물감을 들인 듯 깨끗한 산. 눈에 푹푹 빠지면서 오르는 겨울 산행은 건강에도 너무 좋다.

여름산은 또 어떤가. 푸른 잎들에 둘러 싸여 녹음이 우거진 산들. 블루베리와 산딸기. 오염되지 않은 산의 열매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 뉴욕주립 해리만공원 안에 있는 산. 오르기가 가파르지 않아 어린이와 노인들도 산행한다. 정상에 올라보면 푸른 호수가 펼쳐진다. 한 여름.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는 아가씨도 있다.

이렇듯 인간에게 산이란 너무 좋은 이웃과 같다. 그러나 산이 좋아 산에 오르지만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안전사고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혼자 가는 산행은 절대 피하는 게 좋다. 최소 3명. 그래야 한 명이 사고를 당했을 때, 한 명은 남아 돌본다. 또 한명은 긴급연락을 취하려 하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산행에서의 영웅심은 피하는 게 좋다. 가끔 깎아지른 절벽을 만나 정상에 오르면 객기가 발동한다. 절벽 끝까지 가서 사진을 찍으려는 객기. 무사히 사진을 찍게 되면 괜찮다. 그러나 만에 하나 추락할 수도 있다. 산이 좋아 산에 가서 좋은 공기 마시며 즐겁게 산행을 해야 한다. 쓸데없는 영웅심과 객기는 피해야 한다.

우지윈(36). 비키니로 등반하는 유명 산행인이다. 출신은 대만. 그녀가 비키니를 입고 산에서 찍은 사진은 작품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볼 수 있다. 그런 그녀가 지난 21일 대만의 위산 국립공원 한 골짜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19일. 그녀는 추락한 뒤 위성전화를 통해 구조요청을 했다. 하지만 구조를 못 받았다.

이유는 기상사태 악화로 헬리콥터가 골짜기에 내려갈 수 없었기 때문. 우지윈의 영웅심과 인기를 끌려는 마음. 이 마음이 그녀를 죽게 만들었다. 그녀는 지난 4년간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 100여장을 세상에 내보냈다. 어떤 건 낭떠러지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찍은 사진도 있다. 산은 비키니 입은 예쁜 여자라고 봐주지 않았다.

몇 년 전 친구부부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최종 목적지는 애리조나 주에 있는 그랜드캐년. 세상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 그리고 불가사의 중 하나가 그랜드캐년이다. 이 곳은 수백길이 되는 계곡의 절벽이 수 십리에 걸쳐 이루어져 있다. 관광객은 깎아지른 낭떠러지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위험하여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은 곳들이다. 그런데 친구 부인이 그곳까지 가서 사진을 찍는 거다. 집사람도 혹하여 거기를 가려하는 걸 막았다. 그 부인은 남편이 말리는데도 억척스럽게 사진을 찍고야 말았다. 그러나 거기서 실수하여 추락이라도 했다면. 모처럼 즐겁게 떠난 여행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해 12월 30일. 한국서 유학 온 박준혁(25). 그는 1년간의 캐나다유학을 마친 후 패키지여행으로 그랜드캐년을 찾았다. 그런데 낭떠러지에서 추락했다. 마더포인트와 야뱌파이포인트를 연결하는 사우스림 트레일 아래로 떨어진 것. 발을 헛디뎠다고 한다. 바로 후송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지금까지 뇌사상태다.

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산행은 관광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조심과 안전이다. 뉴욕시에서 2시간 북쪽에 있는 캐츠킬. 웅장한 산들이 많다. 보통 3,000피트 이상이다. 특히, 겨울엔 등산객이 많이 찾는 곳. 트윈, 인디안헤드 등 경관 좋은 산들이 수십 개나 된다. 산은 웅장하나 사고가 자주 생긴다.

비키니 등산가, 우지윈. 젊고도 예쁜 그녀의 비키니등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관광으로 그랜드캐년을 찾았던 박준혁.

한국으로 이송하려 해도 병원비 10억원, 이송비 2억원에 발목 잡혀 부모들은 애만 태운다. 우지윈이 떠나고 박준혁이 뇌사상태라고 산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할까. 아니다. 산은 자연일 뿐이다.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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