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일요일 아침은 비가 내리고 따뜻했다. 뉴저지 레오니아 동생 집에서 자고 오전 내내 뭉그적뭉그적 했다. 오후 3시 맨하탄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춥기 시작하더니 맨하탄에 도착 했을 때는 더더욱 추웠다.
그날은 24절기의 마지막 절기로 추위의 절정이라는 대한(大寒)이었다.
“소한(小寒)집에 대한(大寒)이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세상 살다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예년과 달리 지난 6일 소한은 따뜻했고, 20일 대한은 섭씨 영하 10도 이하로 곤두박질치듯 내려가는 강추위를 몰고 왔다. 대한은 역시 대한이었다.
맨하탄의 겨울은 겨울이 아니다. 빈 나뭇가지의 가로수는 봄보다 더 화려하다. 가을을 지나면서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무들, 어떤 이는 앙상한 나무들이 칙칙해서 보기 싫다고 했다.
심한 복통에 시달리는 친구가 있다. 어떤 때는 몇 시간이고 아파서 쩔쩔맨다. 고통스러워 쩔쩔매는 친구 옆에서 속수무책인 나는 “병원에 가라”고만 했다. 친구는 자신이 아픔을 가라앉히는 처방이 있다고 한다. “생각을 하면 된다.”였다. 많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고통이 사라진단다. 이런저런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무엇인가를 꿈꾸면 사라지는 고통을 앓고 있는 친구.
동지 팥죽을 좋아했던 어릴 적을 생각한다. 꽁꽁 언 팥죽도 좋다고 먹다가 부모님께 꾸중을 들었던, 잊었던 잊지 못할 옛 생각 속으로, 그 추억들 속으로 간다. 가슴 아팠던, 그리웠던, 엇갈렸던, 안타깝던, 허다했던 그런 생각을 한다. 하늘 높이 무수한 별들의 세계에도 빠진다. 깊은 바다, 그 바다 속 깊이에 살아있는 무엇인가도 쫓는다. 그리스 신화에서 로마 신화 속으로도 간다. 불가사의한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 무덤 속으로도, 그 건축물, 그 문화의 진흙 속으로, 람세스의 여자들 속까지 찾아간다.
그러다보면 생각은 현실에 와 있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해야 할 것들 그 꿈으로 가득 차 있단다. 그새 복통은 사라지고 앞으로의 희망이 보인단다. 늘 그렇단다.
11월 12월 해마다 맨하탄의 가로수들은 저온 화상을 입고 서있다. 온 몸에 전구를 감고 색색의 불을 밝히고 있다. 낮은 온도의 전구가 더 큰 화상을 입힌다고 하지 않던가? 저온화상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어린 가문비나무(Spruce)들은 밑동까지 몸통이 잘려 와서 노점에 쌓인다. 여기도 저기도 그렇게 새파랗게 쌓여있다. 어리고 새파랗던 나무들은 1월이 되면 핏기 하나 없이 거리에 버려진다. 다시 살려낼 수 없는 목숨으로 말이다.
누구를 위한 크리스마스인가? 잘리고 부러지고 넘어져도 말 못하는 나무들이 왜, 크리스마스라는 계절에 맞추어 저온화상이거나 잘리거나 하는 몸이어야 하나?
칙칙하게도 잎 새 모두 떠나보낸 나무들은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을 생각하며, 봄을 꿈꾸며 이별과 고통을 견디어낸다. 도시에서 저온화상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크리스마스 장식을 위하여 일찌감치 목숨이 베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최정자/펜클럽 미동부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