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

2018-10-10 (수) 대니엘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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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 우울증?

동부의 고등학교 10학년에 재학중인 한국 유학생 S는 요즘 풀이 죽었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해서 법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어를 잘해도 힘든 분야가 법 쪽인데 뒤늦게 유학 와서 영어가 부족한 너는 안된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언어능력 한가지만이 법 혹은 인문사회 분야 쪽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개인과 사회가 지닌 문제 또는 쟁점에 관해 관심을 갖고 “이건 왜 이럴까?”라는 질문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면 영어라는 걸림돌을 넘어설 수 있다. 그리고, S는 영어와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는 고등학교 3년 그리고 대학 4년, 적어도 7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주변의 영혼없는 코멘트가 S의 기를 꺾었다.

D는 지난 4년 동안 서부, 중부, 동부 순서로 고등학교를 4번이나 옮겨 다녔다.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 쫓겨난 것도 아니요 부모가 직장을 옮겨 이사를 한 것도 아니었다. ‘더 좋은 학군’을 바라는 부모의 바램 때문이었다. 3번째 옮긴 학교를 시작할 때부터 D는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새 학교에서 친구 사귀기도 힘들었고 공부 따라잡기도 어려웠다. 지속되는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몸에 이상이 생겨 수술도 받았다. 온갖 어려움을 겪은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9월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우울증이 심각해져 지금은 집에 돌아와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쉬고 있다.


S와 D는 개인의 감정보다 이성을 먼저 부각시키는 주변 환경의 희생자다. 언어나 인문사회 과목을 잘하면 인문계,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면 이공계로 진출하라는 이분법은 겉으로 보면 이성적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좋은 학군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은 것은 욕심이 아니라 모든 부모의 바램이다. 하지만 이분법과 부모의 바램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학생 개개인의 감정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가치를 자신 속에서 보다 바깥의 영향, 즉 누군가 내던진 말, 학교
성적, 그리고 주변 친구들에게서 찾는다. 한마디로 청소년의 자존감은 타자로부터 온다.

그런데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면 자기비하라는 감정이 따라온다. 자신에 대한 불만에 쌓여 자기비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자해를 하거나 자살 충동까지 경험한다.

S와 D 학생의 소셜미디어를 살펴보면 그들이 얼마나 심각한 자기비하에 빠져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은 홀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림, “나는
여기까지 인가?”라는 글귀, 자해의 흔적이 있는 손목 사진 등등이 무엇을 암시하겠나.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을 수 있는 마땅한 친구도 없고, 부모님께 말해봐야 “공부하는
학생이 무슨 우울증이냐? 그 나이 때는 다 그런 거야”라는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에
유일하게 자신의 속내를 표현할 수 있는 곳은 소셜미디어뿐이다.

이가 아프면 곧바로 치과에 가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병원을 찾지만 정신질환은 일단 감추고 본다. 청소년들이 치료를 꺼리는 이유는 학교 카운셀러나 선생님들이 자신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중에 대학 지원 추천서를 받는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라는 걱정 혹은 정신질환을 앓는 것은 능력 부족이라는 자책감에 있다. 걱정과 자책감 속에서도 청소년들은 자신의 고민을 주변 사람들에게 오늘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관한 오해와 선입견 때문에 그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니엘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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