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SMR, 안정 효과 있나, ASMR 듣는 응답자 98% “기분 좋아진다”고 답해
▶ 뇌 활동^심박수 줄어들며, 불안 해소 등 휴식에 도움
지난달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국내 1세대 ASMR 영상 유튜버‘미니유’ 유민정(30)씨가 특수 마이크 양쪽에 붙은 고무 귀를 귀이개로 만지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경기 고양시에 사는 장예원(35)씨는 잠들기 전 종종 유튜브로 동영상을 본다. 그가 즐겨 찾는 영상은 화려한 뮤직비디오도, 재미있는 콘텐츠도, 유익한 강의도 아니다. 마사지를 받거나 귀지를 파는 소리가 담긴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ㆍ자율 감각 쾌락 반응) 영상이다. 영상을 만든 유튜버가 역할극을 통해 마사지 받는 느낌을 주고, 영상을 보는 이는 이를 통해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장씨는 “복잡한 생각들로 잠들기가 힘들 때 ASMR 영상을 보면 ‘꿀잠’을 잘 수 있어 애용한다”고 말했다.
ASMR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ASMR이 주는 효과에 대한 과학적 입증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국내에선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고, 해외에서도 최근에서야 실험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ASMR 경험자 98% “심리적 안정 얻었다”
안정감과 편안함을 준다는 ASMR 효과에 대한 초기 연구는 설문조사에 그쳤다. 2014년 영국 스완지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페이스북에 공고문을 올려 전 세계에서 ASMR 영상을 본 적 있는 18~54세 사이 남녀 475명을 모집했다. ASMR 영상을 정기적으로 본다고 밝힌 이들 중 98%가 심리적 안정(복수 응답)을 얻었다고 답했다. 또 82%는 잠자는데, 70%는 스트레스 해소에 ASMR이 도움 됐다고 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 중에선 6%가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됐다고 응답했다.
ASMR 효과인 ‘팅글‘(tingleㆍ기분 좋게 소름 돋는 느낌)을 느껴본 소리 유형으론 속삭임(75%)이 가장 많았다. 마사지나 귀지 파기와 같은 개인 서비스(69%), 손톱으로 두드리기ㆍ바스락거리는 소리(64%)가 뒤를 이었다. 연구를 진행한 닉 데이비스 교수는 “ASMR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고 고통도 완화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 “ASMR이 명상과 같은 치료법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억 관장ㆍ감정 판단 뇌 부위 활성
ASMR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16년부터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조금씩 입증되기 시작했다. 캐나다 위니펙대 심리학과ㆍ매니토바대 영상의학과가 참여한 공동 연구진은 팅글을 느껴본 적이 있는 ASMR 사용자 11명과 그렇지 못한 대조군 11명에게 ASMR 영상을 보여준 뒤 뇌의 특정 부위인 DMN(내정상태회로ㆍDefault Mode Network) 변화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비교ㆍ분석했다. 이 연구결과는 그해 6월 국제학술지 ‘사회신경과학(Social Neuroscience)’에 발표됐다.
뇌의 내측전전두엽과 후대상피질, 해마 등에 있는 DMN은 휴식을 취할 때 오히려 활성화하는 뇌 부위다. 아무런 작업을 하지 않아도 기본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컴퓨터처럼 쉬다가도 뇌가 곧바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휴식을 취할 때도 뇌가 전체 산소 소비량의 20% 안팎을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구결과를 보면 ASMR을 접한 이들에게선 정보를 전달하거나 해석하는 영역의 뇌 활동이 감소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상측두회(Superior temporal gyrus), 타인의 의도를 해석하고 공감하는 쐐기앞소엽(Precuneus), 주의력과 기억력을 관장하는 후대상피(Posterior cingulate), 정보 신호를 전달하는 시상(Thalamus) 등이 뇌 활동 감소 부위다.
반면 과거와 관련한 기억을 관장하는 상전두회(superior frontal gyrus)와 중전두회(middle frontal gyrus), 자신의 감정을 판단하는 중후두회(Middle occipital gyrus)는 오히려 대조군보다 활성화됐다. 김래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연구단 연구원은 “개인의 기억 속에 좋은 기억이나 느낌으로 남아 있는 다양한 소리를 다시 끄집어내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ASMR이 단순 심리적 효과가 아님을 어느 정도 증명한 것”이라고 평했다.
올해 6월에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국제학술지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에 소개됐다. 영국 셰필드대ㆍ멘체스터메트로폴리탄대 심리학과 공동 연구진은 18~59세 사이 남녀 110명을 대상으로 ▦여성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수건을 단정히 접는 방법을 설명하는 ASMR(a) ▦실험참가자가 고른 ASMR(b) ▦남성 요리사가 파스타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일반 영상(c) 등 세 가지를 보여준 뒤 심장 박동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ASMR을 본 적이 있는 55명은 물론, 처음 접하는 나머지 사람들도 ASMR을 경험할 때 심박동 수가 줄어들었다. ASMR을 경험한 이들의 심장박동 수는 평균 76.30bpm이었으나 a와 b영상을 볼 때는 각각 70.43bpm과 70.95bpm까지 떨어졌다. ASMR이 아닌 c영상에 노출됐을 때 심장박동 수(74.10bpm)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ASMR을 처음 경험한 이들 역시 평균 심장박동 수(75.91bpm)가 하락(a영상 71.74bpmㆍb영상 71.04bpm)했다. 토마스 하슬러 멘체스터메트로폴리탄대 교수는 “ASMR 영상이 수면과 휴식, 스트레스ㆍ불안감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슬라임 피부 발진 조심해야
ASMR과 같은 이유로 인기를 끌고 있는 슬라임(액체 괴물)의 심리안정효과에 대해선 아직 이뤄진 연구가 없다. 다만 슬라임이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만큼 사용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슬라임의 주요 재료인 붕사는 염기성 물질이어서 어린아이나 여성 등 피부가 약한 사람들이 오래 만지면 피부에 발진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슬라임을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안구 표면이 손상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교수는 “슬라임에 쓰인 재료들은 피부로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 생리 주기를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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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