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설교에서다. 그 설교의 결론은 기독교의 모든 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음을 밝히는 거였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설교에 요새 한국 예능프로에서 종종 쓰는 용어인 ‘기승전결’ 표현을 끌어들였다. 기독교는 ‘기-승-전-그리스도’ 아니면 ‘기-승-전-십자가’다를 말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면서 든 예화가 ‘기-승-전-김치찌개’였다. 나의 최고의 음식은 김치찌개다, 어딜 가도 김치찌개만 있으면 그만이다, 난 한 달 내내 하루세끼 김치찌개만큼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난 늘 ‘기-승-전-김치찌개’다, 이렇게 실례를 든 것이다.
참 재미있는 게 사람들은 설교 예화의 참 목적인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대한 강조점보다는, 그걸 말하기 위해 잠시 수단으로 동원되었을 뿐인 김치찌개만 생생히 기억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 당분간 어딜 가도 나만 보면 김치찌개였다. 심방 가도 김치찌개 끓여주고, 식당엘 가도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김치찌개 오더해주고, 심지어 교회 런치에서도 특식으로 김치찌개가 나왔다. 김치찌개 대박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치찌개는 내겐 ‘소울 푸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어머니가 교회일로 바빠 집 비우시는 일이 잦아졌던 청소년시절에는 요리솜씨 좋은 작은누이가 김치찌개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명품 수준의 김치찌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돼지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기에 돼지고기 대신 멸치 몇 가닥 넣어 끓이는 수준이었는데도 난 지금까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김치찌개 외에도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소울 푸드는 몇 개 더 있다. 세 개의 음식이 기억난다. 먼저 뭇국이다. 멸치국물에 무를 가늘고 납작하게 썰어 넣어 끓인 국이다. 마지막엔 달걀을 풀어 넣고 매콤한 고춧가루를 뿌린다. 그게 다다. 근데 독특한 맛이 난다. 세상 어딜 가도 아직까지 난 이런 국 구경한 적이 없다.
두 번째 음식 역시 무로 만든 무침이다. 채로 썬 무를 멸치국물에 삶아 무친 나물 형태의 음식이다. 난 이 반찬을 썩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어머니에겐 이 음식을 만드시는 특별한 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 치는 날이다. 예를 들어 대학 입학고사를 치르는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이 반찬이 등장했다. 한참 후 왜 그러셨는가 여쭤보자 그 이유를 말씀해주시긴 한 것 같은데 그게 명확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내겐 그 이유가 그토록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아서다.
세 번째 음식은 어머니 표 잔치국수다. 이것 역시 멸치국물에 말은 것이다(아무튼 어머닌 멸치와 대개 친하셨던 것 같다!). 국수를 국물에 섞은 후 달걀지단과 파를 송송 썰어 넣은, 어느 누가 봐도 간단히 만든 음식이다. 그런데 지금도 제일 먹고 싶은 게 이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이미 천국에 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내 추억 속으로만 간직하려고 한다. 나의 영원한 소울 푸드로.
이처럼 소울 푸드 안에는 인간의 ‘귀소 본능’이 담겨있다. 나의 고향 땅, 어머니 냄새, 그가 매일 지어준 밥과 반찬들, 꿈속에 자꾸 나타나는 어릴 때의 장면들, 이런 게 다 언젠가 꼭 다시 돌아가고픈 나의 ‘본향’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나의 그러한 본능적 심리를 대변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장치가 있다면 그건 바로 어머니가 해주신 소울 푸드인 것이다.
기독교 역사의 최고의 신학자인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워주셔야만 되는 공간이 따로 존재한다고. 그 공간은 일종의 심리적 본향 같은 장소이리라. 그래서 인간은 어느 누구든 자신의 진정한 본향을 찾고 싶어 하는 본능들을 다 갖고 있다. 역으로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복음이 소중한 이유이다. 내가 돌아가야 할 그곳을 다시 돌아가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요 근거 같은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에 이런 말이 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으라.” 내 인생의 ‘결국’은 어디에 있는가? 영혼의 구원에 있다. 나의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 날이 바로 나의 진정한 소울 푸드를 먹는 날이 될 것이다. 오늘도 그날을 고대하며 하루를 지낸다. 그러니 힘이 난다. 내게는 가야 할 그 본향이 있다는 걸 알기에.
<
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