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병은 죽지 않는다˝

2018-09-2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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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의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Fear: Trump in the White House) ‘가 9월11일 출간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발간 첫 주 만에 110만 부가 팔려 10판 인쇄를 했고 24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밥 우드워드는 지난 1972년 칼 번 스타인 기자와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보도 했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끈질긴 탐사보도는 닉슨 행정부의 조직적인 선거방해, 정치 헌금의 부정수뢰, 탈세 등을 밝혀냈다. 드디어 살아있는 권력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1974년 8월9일 사임시켰다.

이러한 언론계의 전설 밥 우드워드가 이번에 낸 책 제목 ‘공포’ 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 진정한 권력은 존경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진정한 권력은, 이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공포 ‘를 통해서 온다 ”고 2016년 대통령 후보 당시 트럼프는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한다.


특히 이 책에 북핵 관련발언, 주한미군, 한미FTA 등 한국 관련 내용도 여러 차례 나오는데 잘못된 결정이 부를 수 있는 공포와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책이 나온 다음날, 뉴욕타임스 인터넷 판에 트럼프를 공격하는 익명의 오피니언 칼럼이 실렸다. 트럼프는 이 칼럼을 쓴 이를 배신자라며 찾고 있고 부통령을 비롯 고위관리들은 모두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우스운 모습도 보였다. 화가 난 트럼프 대통령은 웨스트윙에 휴대전화 지참 금지를 내렸다. 올 초에는 영화 ‘ 더 포스트 (The post) ‘도 개봉되어 화제가 되었다.

1971년 뉴욕 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보도가 미전역을 발칵 뒤집는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 행정부까지 베트남 전쟁의 피해가 나날이 커져 가는데 젊은이들을 계속 전쟁터에 보내고 있다는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지방지인 워싱턴 포스트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금지된 시점에서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한다. 편집국장 밴 브래들리(톰 행크스 분)는 베테랑 기자들에게 기사마감 시간 10시간 전에 보고서 4,000페이지를 검토한 뒤 기사를 작성시킨다. 이때 행정부 고위간부, 신문사 법률고문까지 보도 금지를 강요한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 경영주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분)은 용감한 결단을 내린다. 전 재산과 자신, 회사의 안위 이전에 미국을 위해 진실 보도를 감행한 것.

드디어 연방대법원은 정부로부터 국가기밀 누설죄로 고소당한 뉴욕타임스와 뉴욕포스트의 손을 들어준다. “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 면서.

영화의 마지막은 1972년 6월17일 야간순찰 경비원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건물에 강도가 든 흔적을 발견하고 경찰서로 신고전화를 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시작이다.

‘공포’ 출간 발표회장에 나온 밥 우드워드, 패기 충만하던 20대의 젊은 기자는 46년이 지나서 은발의 노신사로 돌아왔다. 세월이 지나도 그의 눈빛은 생생히 살아있다.
그는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공포’에서 현재 백악관의 혼란상,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빠져 탄핵 가능성이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우드워드를 보며 “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 는 더글러스 맥아더가 퇴역식에서 한 말을 떠올린다. “ 노병은 죽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 로 바꿔본다. 군복은 벗어도 그의 빛나는 업적은 영원히 남는 것처럼, 한번 기자는 영원한 기자이다.

한국이나 뉴욕이나 이런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하지만 한국이라서, 뉴욕한인사회라서 축소되거나 그냥 넘어가곤 한다. 권력남용, 사기와 공갈, 부정 및 뇌물수수, 비겁한데 비열하기까지 한 갑질 등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횡행한다. 하지만 그 권력 별 거 아니다. 영원한 권력이란 없다.

가짜뉴스가 많은 인터넷 시대일수록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기자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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