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창간 49주년 특집] “자바는 살아있다… 제2 도약 위한 과도기일뿐”

2018-06-08 (금) 남상욱 기자
크게 작게

▶ 변화 소용돌이에 휘말린 ‘다운타운 자바시장’

▶ 임금·렌트·워컴 부담 속, 새 비즈니스 환경에 맞는, 패러다임 변화 안간힘

[창간 49주년 특집] “자바는 살아있다… 제2 도약 위한 과도기일뿐”

다운타운 자바시장이 긴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밝은 미래’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한인경제의 젖줄’, ‘한인경제의 토대’.

‘자바시장’이란 명칭이 나올 때면 함께 따라 나오는 수식어구들이다. 이들 수식어구들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봉제, 원단, 의류도매업(매뉴팩처)으로 대표되는 자바시장이 한인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자바시장이 지난 수년간 계속되어온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되살아나고 있다.

“자바는 이제 끝났다”라는 말이 아직 회자되고 있지만 이 이야기는 현실과 크게 동떨어졌다는 것을 증명하듯 과거와 다름없이 건재한 봉제 및 의류업체들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들 업체는 “환경 변화에 따른 시행착오와 업계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라며 “미래는 밝다”고 강조한다. 자바시장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본다.


■ 자바시장의 과거: ‘자바의 전성시대’

한인 의류·봉제업계 원로들에 따르면 자바는 ‘자버(Jobber)’의 잘못된 발음이다.

영국 증권거래소의 중개인을 일컫던 말이었던 자버는 미국에서는 일용직 일꾼(odd-jobber)이나 중간도매상(rack-jobber)의 의미로 쓰이게 됐다.

자바시장이 형성되기 전 1970년대 LA다운타운은 전성기를 맞고 있던 한인 봉제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피코와 5가, 힐과 메인 사이에는 봉제업체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으며 당시에는 미국 내 생산이 주를 이뤘고 단가도 현재보다 좋았다는 것이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말이다.

자바시장은 봉제업체와 함께 1970년대 말에 태동됐다. 올림픽과 12가, 샌티와 메이플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매뉴팩처링에서 팔다 남은 옷을 가져다 도매 형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자바의 유래다.

한인 의류도매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자바시장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 비싸진 렌트비와 유대계를 피해 샌티 앨리 지역을 벗어나 한인들이 샌피드로 길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자바시장의 한인업체들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현재 샌피드로 홀세일 마트는 이 당시 형성된 것으로 현재 자바시장 중심이 됐다. 유명 의류 소매체인 ‘포에버 21’도 이 홀세일 마트에서 성공 기반을 닦았다.

2014년 한인 자바시장에 위기가 찾아왔다.


멕시코 마약 조직 관련 돈세탁 수사를 위해 연방 수사당국요원 1000여명이 일부 한인업체에 들이닥쳐 대대적인 돈세탁 관련 수사를 벌였다. 그 결과 9,000만달러에 달하는 돈이 마약관련 자금이라는 이유로 압류됐으며 한인 2명도 체포됐다. 이 때부터 경영환경도 악화되면서 자바시장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 자바시장의 현재: 위기 vs 재편

현재 자바시장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때 LA 지역에서 1,000여 곳이 넘었던 한인 봉제공장은 이제 300~400개 수준으로 줄었다. 한인 의류업체 역시 최고 전성기였을 때 1,200개에 달했지만 그 숫자가 800개 정도로 줄어든 상황이다.

그만큼 현재 경영환경이 자바시장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자바시장에 있는 한인업주들이 ‘3종 세트’라고 부르는 ‘임금, 렌트, 종업원 상해보험(워컴)’은 봉제와 의류업계 모두에게 직격탄이 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LA카운티에서 종업원 26명 이상인 사업장의 최저임금은 7월1일부터 13.25달러로 인상된다. 여기에 내년 7월에는 14.25달러, 2020년 7월에는 15달러까지 오를 예정이어서 자바시장 업주들의 인건비 부담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상가 렌트비의 계속적인 상승도 자바시장 불황의 한 원인이다. 상업용 부동산 전문업체 CBRE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LA 내 상가 렌트비는 평균 9%나 상승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건비와 렌트비 상승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한인들의 의류관련 소매점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들이 빠지고 나간 자리에는 피트니스센터, 식당, 요가스튜디오, 커피숍 등이 메우고 있는 형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워컴 보험료의 부담도 자바시장 한인 업주들에게는 부담이다.

2016년을 기준으로 가주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업주들은 임금 100달러 당 3.24달러를 보험료로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 최고 기록으로 2위인 뉴저지보다 11%나 높고, 50개 주 중간 보험료 1.84보다 무려 188%나 높은 수준이다. 종업원 워컴에 따른 자바시장의 한인업주들의 부담을 짐작할 수 있는 있는 대목이다.

또한 가주 노동법이 ‘친 종업원’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을 악용해 거짓으로 각종 상해보험 관련 소송은 물론 민사소송도 함께 제기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3만달러 미만은 무조건 합의를 유도하는 주정부의 관행 탓에 가짜 상해보험 클레임에 폐업을 하는 업체들도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형 의류업체의 파산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자바시장의 한인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웨트실’과 ‘차밍 찰리’ 등 한인업체들과 납품 거래가 활발했던 대형 브랜드 의류업체들이 연달아 파산하면서 직간접으로 피해를 본 한인업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현재 자바시장의 한인업체들이 직면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의류도매업체들은 끊임없는 가격 낮추기 경쟁에 진이 빠지고, 원단업체들은 결제를 늦추거나 아예 결제 없이 문을 닫는 불량고객들과 무차별 디자인 도용 업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봉제업체들은 노동력 부족으로 사람찾기도 쉽지 않아 납기일 맞추기도 빠듯한 상황이다.

■ 자바시장의 미래:

온라인 활성화, ‘상생’위한 노력 병행

그렇다면 자바시장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자바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은 현재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미래는 밝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중심으로 ‘업의 진화’를 모색하고 있는 한인업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인업체들은 온라인, 소셜미디어 중심으로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오랫동안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영어와 IT 활용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 1세대들은 워킹 바이어들의 발길이 잦아 들면서 매출 급감을 실감했다.

이에 한인 의류 도매업계는 올해 초 새로운 온라인 도매 마켓플레이스 ‘패션 도미노’(Fashiondomino.com)을 런칭했다. 패션 도미노는 의류 바이어들의 구매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추세 속에서 런칭되는 플랫폼으로 한인 의류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패션 도미노는 검증된 바이어들과 소매업자들을 대상으로 의류, 액세서리, 가방,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온라인 B2B 사이트이다.

과거 미국 내 주문에 의존했던 ‘로컬 도메스틱’ 방식에서 ‘수입’ 방식으로의 변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최저임금이나 노동법 등을 어겨가면서 자바시장이 마치 범죄 온상으로 보이는 현실에 대한 대안이다.

최저임금과 노동법에 영향을 덜 받는 해외 지역이나 미국 내 타주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봉제나 의류도매업에서 무역업으로 업의 개념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업의 진화이자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한인의류협회 김영준 회장은 “과거 사업모델이 업체와 업체의 거래 방식인 B2B였다면 업체와 소비자 방식인 B2C로 확대하거나 변모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만 만든다고 구매자들이 알아서 물건을 사주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도매상가 등에 브랜드와 제품을 충분히 오랫동안 노출시켜야 한다. 따라서 투자와 인내심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위해 의사소통에 문제없는 2세를 내세워 주류시장 공략에 앞장서는 업체도 보인다.

샌피드로 패션마트 협회 단 이 전회장은 “20~30대 젊은 2세들의 자바시장 유입이 늘면서 주류 시장 진출 등 시장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며 “체감경기는 나쁘지만, 2세들을 내세운 자바시장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했다.

봉제업계도 생존을 위한 변신에 올인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저임금과 노동법을 준수하면서 업을 운영하는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 언제까지 노동법을 어겨가며 단가 타령만 하는 소모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다.

일부 업체들은 경비절감의 일환으로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해 거래처 확보를 시도하고 원청업체들로부터 온라인 주문을 받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인봉제협회 최대성 회장은 “낮은 단가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노동법 준수가 봉제업 변화의 첫발이라 생각한다”며 “법을 지키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등 법을 지키지 않으면 봉제업계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바시장의 이 같은 ‘업의 진화’의 성공 여부를 당장 따지기에는 쉽지 않다. ‘이제 변화해야 산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1세대 자바시장에서 2세대 자바시대로 이행과정에 있는 상황이다.

김영준 회장은 “자바시장은 1세대와 2세대의 세대교체와 함께 경영 방식의 변화,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등 변화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며 “누가 빨리 변화에 적응해서 충실하게 이행하느냐가 개인적인 과제이자 자바시장의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