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창간 49주년 특집] ‘신속 추방·무관용 원칙’사수

2018-06-08 (금)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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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법무부 ‘밀입국자 기소’ 올인, 이민법원 통제, 장악력 강화로

▶ ‘영혼 없는 세계화’강한 미국 지향

[창간 49주년 특집] ‘신속 추방·무관용 원칙’사수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민단체 회원들이 샌디에고 인근 태평양 연안 국경 펜스에 올라 반트럼프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AP]

[창간 49주년 특집] ‘신속 추방·무관용 원칙’사수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있지만 세션스 장관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추동하는 강력한 집행관 역할을 하고 있다.


강성 반이민주의자로 꼽히는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가혹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연방 법무부가 불법이민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 불법이민자에 대한 전원기소 방침, 추방재판 신속진행 방침, 밀입국 부모와 자녀 100% 격리방침 등 이민자 추방을 용이하게 하는 강경조치들을 쏟아내고 있어 대규모 추방사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세션스 법무장관은 대규모 이민자 추방의 핵심 열쇠라 할 연방 검찰과 이민법원을 관할하고 있어 평소 불법이민자 전원 추방을 주창해온 그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구상, 세션스 집행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세션스 장관이 현실로 만들었다” 미 온라인 매체 ‘복스’(Vox)세션스 장관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설계와 집행을 주도하고 있다며, 세션스 장관을 트럼프의 반이민구상을 현실로 구현해낸 인물로 묘사했다. ‘복스’는 “내일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내각이 모두 물러나도, 세션스 장관의 반이민정책이 가장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세션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영구적 시스템으로 구축해나가고 있다고 그의 역할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법무부 장관으로서, 연방 검찰의 수장으로서, 모든 자원을 동원해 ‘불법이민’과의 전투를 수행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을 세션스 장관의 법무부가 점차 주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션스의 그림자가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를 뒤흔든 ‘무슬림 입국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하자 배후에는 당시 법무장관 내정자였던 제프 세션스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당시 포스트는 “입국금지 행정명령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명이 있을지 몰라도 모든 결정의 뒤에는 다른 사람의 지문이 찍혀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국금지 행정명령에서부터 DACA 폐지, 불법이민 전원기소, 밀입국자 부모-자녀 격리 조치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실행한 대부분의 이민정책들에 세션스 장관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법무부, 이민정책 핵심 역할

이민시스템에서 연방 법무부의 역할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이민시스템 집행에서 연방 법무부는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법무부 수장인 세션스 장관이 이민정책을 집행하는데 중요한 관문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연방검찰이 형사 기소하는 범죄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밀입국과 재밀입국 등 이민법 위반 혐의여서 이민정책 집행에서 법무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연방 검찰이 기소한 형사 사건들 중 이민법 위반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여서 이민정책 집행에서 법무부가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라큐스 사법정보센터(TRAC)는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회계연도에 연방검찰이 기소한 전체 형사범죄 사건들 중 52%가 이민법 위반 혐의로 형사기소된 사건이었다.

■이민법원 걸림돌 제거하라

연방 법무부가 이민법원을 관할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이다. 70만건에 달하는 추방소송 적체를 신속하게 해소한다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의 문이 열릴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 추방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바로 이민법원 추방소송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기대하는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연방 법무부과 세션스 장관이 이민법원과 이민판사들에 대한 통제와 장악력을 높이면서 신속한 추방소송 진행을 밀어붙이고 있어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추방소송 지연 용남 못해”

세션스 장관은 지난달 17일 미 전국 이민법원 판사들에게 추방재판을 지연시키지 말 것을 지시하는 명령을 발동했다. 법무부 산하 이민재심집행국(EOIR) 소속이지만 이민법원과 이민판사들에게 법무장관이 추방소송과 관련한 지시를 직접 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세션스 장관은 이날 발동한 임시명령문에서 “이민판사들에게 ‘행정적 종결’(administrative closure) 방식을 통해 무제한적으로 이민절차를 지연시킬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지적하고 “행정적 종결 방식을 통해 추방재판이 지연되면서 불법체류자들이 무기한 미국에 체류하지 못하도록 추방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세션스 장관의 이같은 지시는 추방소송 지연을 통해 불체자들이 사실상 장기체류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세션스 장관은 오바마 행정부가 이민법원의 추방재판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불법체류 이민자들의 추방절차를 가로 막아온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대규모 추방사태 현실화

이민판사들의 자의적 소송지연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추방소송을 신속하게 진행하라는 세션스 법무장관의 지시는 법무부가 사실상 대규모 추방의 길을 닦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2012회계연도부터 2017회계연도까지 이민법원 이민판사가 행정적 종결 처분을 내린 추방소송은 약 21만 5,0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세션스 장관의 지시로 20여만건에 달하는 추방소송 케이스가 신속하게 처리된다면 단기간에 수만여명의 추방소송 계류 이민자들이 추방되는 대규모 추방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민재심집행국(EOIR)이 최근 공개한 이민법원 소송적체 현황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미 전국 이민법원에 계류 중인 추방소송은 69만 7,77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65만건에 비해 5만여건이 급증한 것이다. 이민법원 적체 소송 건수는 지난 2008년 이래 10년 연속 증가해 10년새 약 400%가 늘어났다.

■“1인당 700건 처리하라”

추방소송 신속처리를 목표로 이민 판사들에게 초유의 ‘판결할당제’를 도입키로 결정한 것도 제프 세션스 장관의 연방 법무부이다.

연방 법무부가 지침으로 내린 ‘판결할당제’는 이민 판사에게 매년 일정량의 판결을 권고하고 충족 여부를 업무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이민판사들에게 추방소송을 가능한 신속하게 종결시킬 것을 지시한 것과 다르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만족할 만한’ 수준의 업무 등급을 받으려면 이민판사 한 사람이 한해 700건의 추방소송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법무부는 이 지침에서 “할당제의 목적은 사건이 지연 처리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완료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은 이민법 강화 차원에서 이를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속한 추방소송 처리를 통해 단기간에 대규모로 이민자를 추방하겠다는 법무부와 세션스 장관의 속내가 엿보이는 지침이다.

■‘영혼 없는 이민정책’,

70여만명에 달하는 추방유예 청소년들의 추방위기로 몰아넣었던 지난해 9월의 ‘DACA폐지’결정에서부터 불법이민에 ‘무관용 원칙’ 적용과 전원기소 방침, 그리고, 밀입국 부모와 자녀에 대한 100% 격리 조치 등 트럼프 가혹한 반이민 조치들은 대부분 세션스 장관과 법무부가 주도한 정책들이다. 세션스 장관은 지난 달 불법 이민과 국경 단속에 대해 ‘무관용 정책’(Zero Tolerance)을 선언하고, 밀입국자와 불법이민자에 대한 전원 기소 방침을 발표했다.

또, 세션스 장관은 아동을 밀입국 시키는 불법이민 부모들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법을 적용해 자녀들과 격리시키겠다며 그것이 싫다면 자녀를 불법 입국시키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 언론들은 가혹하게 보이는 세션스 장관의 엄격한 불법이민 대처가 그의 평소 소신과 신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션스 장관은 상원의원 재직시부터 ‘영혼 없는 세계화’를 내세우면서 자유무역과 국제적 연대, 유색인종 이민 등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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