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책사의 덕목

2018-04-0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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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말경 중국 허난성의 평원지대에서 발견된 고분이 삼국지 위나라의 시조인 조조(155~220)의 묘로 최종확인 됐다고 한다. 삼국지에서 유비, 손권에 맞선 간웅으로 그려진 조조는 냉혹하고 냉철한 인물이지만 전장에서 직접 칼을 휘두르며 중원 화북평원 일대를 장악했고 통일의 80%이상 기반을 닦았다.

과거 중원을 얻으려는 제왕들에게는 책사(策士)가 있었고 이들은 제왕을 보좌하면서 수많은 전투에서 지략으로 적을 물리치고 정책으로 국민을 이롭게 했다. 최고 권력자가 국가 중대사를 혼자 고민, 판단, 결정할 수 없으니 책사의 존재는 필수였다.

한나라 유방에게는 장량, 소하, 한신이라는 책사가 있었고 항우는 범증이라는 책사가 있었으나 제대로 쓰지 못해 패했다.조조는 한나라 왕조가 쇠락하고 어지러운 난세에 천하를 안정시켜 나간 공이 있는데 그의 옆에는 순욱이란 인품과 경륜을 갖춘 책사가 있었던 것. 촉나라 유비의 책사는 제갈량(181~234)으로 제갈공명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유비가 삼고초려 하여 등용된 제갈량은 촉나라 승상으로써 우유부단하나 덕목을 지닌 유비를 도와 촉나라를 다스렸고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도 평생 충직한 신하로 살았다.


그리고 책사 사마의가 있다. 사마의(179~251)는 위나라 조비의 책사였다. 위나라 군대를 이끌어 제갈량과 치열한 싸움 끝에 북벌을 막아내고 조조, 조비, 조예, 조방 위 왕조 조씨 4대를 섬겼다. 그에게는 희대의 전략가, 주군을 배신한 자라는 말이 따라 다닌다.
자신의 비범함을 숨기기 위해 말을 돌보는 하급관리 일을 했고 출사한 이래 끝까지 살아남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아 손자 사마염이 조방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사마씨의 진(晉)나라를 세운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고려시대 왕건의 책사 도선국사,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책사 정도전, 태종 이방원 책사 하륜, 수양대군 책사 한명회 등이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하는 것이다 보니 지도자 옆에는 수많은 책사가 필요하다. 오늘날,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도 책사가 필요하다. 권력 쟁취과정을 디자인 하고 집권 후에는 정책을 기획집행하면서 정치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로 ‘킹 메이커’라는 표현보다는 ‘책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책사의 덕목(德目)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책사는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 사람, 사물. 사안에 대해 미리 내다보는 능력,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최고 권력자와 깊은 신뢰관계가 있어 입바른 소리를 확실하게 말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또한 책사는 자신이 나가고 물러날 때를 알고 결단 실천하는 심지가 있어야 함은 물론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 책사가 말을 많이 하면 그를 등용한 이의 권력기반이 약해진다. 책사가 흥분하고 설치는 순간 그는 책사가 아니라 정치꾼으로 전락한다.

지난 2017년 5월10일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남북관계에 대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4월말 남북정상회담, 5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책사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반중에 대북 강경파인 볼턴이 있고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는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왕후닝 주임이 있다. 그는 ‘21세기 제갈량’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번에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헌법개정 추진도 시진핑의 책사인 왕후닝의 작품이라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에는 어떤 책사가 있을까? 정책 및 전략 책사, 외교 및 통일 책사, 경제 책사, 복지 책사 등등 해박한 지식과 지혜, 경륜을 갖춘 자들이 필요하다. 북한의 실체를 파악하고 외교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냉정한 책사, 그런가 하면 진전된 비핵화 조치 등 실리를 추구하는 한편 문제점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지 않는 부드러운 성품에 겸허한 마음을 지닌 책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책사는 1인자를 더욱 빛나게 하는 자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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