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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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금 저울

2018-03-02 (금)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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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아침마다 몸무게를 재보기 위해 저울에 올라간다. 올라갈 때마다 십분의 일 눈금 하나에까지 집중하게 된다. 전날의 식사량과 운동의 강도에 따라 저울 눈금의 격차가 있게 마련이지만 예상했던 범위를 벗어나 숫자가 올라가면 기분은 다운된다. 생각대로 덜어낼 수 없는 것이 내 몸의 무게라는 것을 아침마다 실감한다.

지금도 전통시장에 가면 물건을 저울에 올려 판매하는 곳이 있다. 눈금저울에눈짐작으로 물건을 올려서 조금 모자라다 싶으면 더 올리고 많다 싶으면 살짝 덜어내면서 양을 맞춘다. 사고파는 사람의 흥정이나 기분에 따라 눈금과 상관없이 덤으로 듬뿍 집어주기도 한다. 겉보기와는 달리 무게가 많이 나가거나 적게 나가는 것이 있는 것을 보면 눈금 저울에 올려야 할 것이 있고 눈금 저울로도 계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잎새 없는 나뭇가지에 푸른 기운이 감돌고 꽃망울이 눈 뜨는 것을 보니 눈금 저울로는 가늠할 수 없는 흙의 기운이 느껴진다. 한결 상쾌해진 새들의 노랫소리가 산뜻한 바람을 불러들인다. 겨우내 몸에 껴안고 있던 두툼하지만 가벼운 오리털 코트와도 잠시 이별을 서둘러야겠다.


봄이 오는 길목은 소리 없이 분주하다. 아침이면 낯익었던 것들이 새롭게 찾아든다. 볼 수 없는 곳에 생명의 신비는 진행되고 간밤에도 보슬비는 홍매화를 깨웠다. 봄에는 신체 리듬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재정비를 하게 한다. 쉬었던 운동도 다시 시작하여 추위에 움츠렸던 경직된 근육을 풀어 주게 된다.

나이 들면서부터 재산목록 1호가 건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몸이 무거워질수록 모든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학전문가들의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첫째도 운동 둘째도 운동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핑계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결단은 몸보다 마음으로 먼저 하게 되어있다. 생각이나 감정에도 무게가 있다. 짓누르는 마음의 무게부터 덜어내야 모든 행동이 순조로워질 것이다.

흔들리는 눈금 위에서 몸과 마음의 무게가 평행선을 달리기는 쉽지 않다. 평상심 유지는 나의 몸과 마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이끌어준다. 마음먹기에 따라 어렵게 생각했던 일들도 실천에 옮기기가 쉬울 것이라며 나를 채근한다. 남편한테 슬며시 물어보았다. “당신 마음의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요?”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있으니 무거울 것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의 무게는 정상이야” 라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크지도 작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게가 있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 했을까. 작은 눈금에 연연하며 코앞의 일과 씨름하다 소홀히 여긴 시간은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겠지만 남아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 건강도 챙기고, 마음의 무게는 덜어내며 이 봄을 시작해야겠다.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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