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빌리 그레이엄 목사 타계

2018-02-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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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가장 유명한 군중집회 목회자 향년 99세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 타계
대규모 군중집회로 유명한 미국 기독교계 거목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타계했다. 향년 99세.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은 21일 “지난 몇 년간 전립선암, 파킨슨 병 등과 싸우던 그레이엄 목사가 숨을 거뒀다”며 “빌리 그레이엄 복음주의협회 대변인이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21일 보도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몬트리트에 있는 자택에서 영면했지만 구체적인 사망 당시 정황이나 사인 등은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침례교 목사인 그레이엄 목사는 세계적인 복음주의 전도사였다.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다. 16세 때 유랑 목회자의 강론을 듣고 감명받아 기독교에 귀의했으며 1939년 목회자가 됐다. 1954년 영국 런던 대형 아레나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강론해 명성을 날렸고 우리 시대 가장 성공한 교회 부흥사를 일궜다. 60년 넘게 그의 강론을 직접 들은 신도 수만 2억 1,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며 텔레비전 강론을 들은 이들은 훨씬 많다.


심지어 김일성 생존 당시인 1992년과 1994년 방북해 평양에서도 외국인 목사로서는 처음으로 설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년 시절 교회를 다녔다고 회고록에 고백했던 김일성을 만나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한국과도 인연도 남다르다.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12월 15일 부산에서 설교 집회를 열었다. 당시 부산에 모인 북한 출신 피란민 가운데 많은 교인이 이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6년 서울운동장 집회엔 8만여 명이 모였으며 1973년 5~6월엔 전국을 돌며 연인원 334만명을 대상으로 설교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저술 활동도 왕성해 30권의 책을 남겼다. 또 뉴미디어를 활용한 설교를 개척한 목사로도 유명하다.

그레이엄 목사는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백악관 회동 때 유대인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02년 3월 미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한 두 사람의 회동 녹음테이프에는 “유대인은 포르노물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그레이엄 목사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또 그는 “내가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어서 내 주변에 유대인들이 몰리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미국 역대 대통령들에게 중요한 정신적 지도자 역할도 자임했다.

또 9ㆍ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등 미국민이 곤경에 처한 현장을 직접 찾아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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