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민재판과 무죄추정(無罪推定)의 원칙

2017-10-20 (금) 김갑헌/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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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할리우드 영화계의 거물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이 성추행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배우들이 입을 열면서 시작된 이 만화같은 사건은 일파만파를 일으켜 뉴스와 언론매체들을 뒤덮고 있다.

오스카 상을 주는 아카데미는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 와인스틴을 아카데미에서 축출하기로 결의 했으며 “나도 당했어… Me, too!”라는 프로그램이 소셜미디어와 TV, 라디오에 홍수를 이루고 있다. 성추행을 했다면 그가 누구든지 당연히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그 죄를 묻는 것은 당연한 것 이다.

그러나 언론매체들이 이 사건을 다루는 과정을 보면서 무언가 불편한 것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와인스틴이 성추행을 했을 가능성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경찰에서도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한다.“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처럼 아무 근거 없이 이런 일이 사건으로 터뜨려지기는 거의 불가능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마치 육이오(6.25) 사변을 겪은 어른들이 들려주던 인민재판(人民載判)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인으로 생각되는 사람을 끌어낸다. 죄목이 요란스럽게 낭독된다. 둘러선 군중들이 ‘옳소, 옳소’를 외친다. 죄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변명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돌에 맞아 죽는다. 여기에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분위기를 더한다면 둘러선 TV 카메라와 이를 보도하는 기자들의 선정적인 목소리가 요란하다는 정도가 아닐까?

프랑스 혁명 이후로 서구와 세계의 거의 모든 소위 민주국가에서는 그들의 헌법 속에 무죄추정의 원칙 (The Presumption of Innocence)을 형법의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는 죄형 법정주의라는 원칙과 함께 기초적인 인권을 보호하려는 민주국가의 최소한의 법적인 장치이다. 죄인으로 지목된 사람도 철저한 수사 과정을 거쳐서 공명 정대한 재판을 받고 죄가 확정될 때 까지는 무죄라는 원칙인데, 와인스틴의 경우 이 기초적인 원칙이 과연 지켜지고 있는지 혹은 언론매체의 선정적인 소음이 유죄를 이미 선고한 것은 아닌지 한 발 물러나 냉정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통령 탄핵 과정도 마찬 가지였다. 군중들의 목소리가 이성을 압도하고, 이념의 편향이 법의 원칙을 파괴하는 사회는 결국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중우(衆愚) 정치의 부끄러움을 역사에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민주사회를 지키는 큰 힘이 언론인 것은 사실 이다. 그러나 언론이 그 원래의 본분인 보도의 사실성과 진실함 보다는 보다 많은 시간과 지면을 소위 전문가들의 의견과 기자들의 편향된 (Slanted) 콤멘타리에 할애 할 때, 이를 보고 읽는 독자들이 보도된 사실을 스스로 살피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 이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은 아직도 꿈에 불과한 것 일까?

<김갑헌/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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