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사 이야기

2017-09-16 (토) 정정숙/전직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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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더 나은 형편에서 살게 되었는데도 나는 이사를 선호하지 않았다. 10년 이상 아파트 생활에서 남편이 한국에서 친구가 온다며 방 세 개짜리 패밀리 하우스를 충동적으로 얻었다. 친구는 오지 않았지만 두 딸이처음으로 자신들의 방을 갖게 되었으니 잘 된 일이었다.

그곳에서 6년을 살았을 즈음, 남편의 여자 조카가 와서 두어 달 우리 집에서 머물렀다. 유대인 주인 할머니가물세와 개스비를 매월 200달러씩 더달라고 하는 바람에 남편이 말다툼을 하고 이사를 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대로 눌러 살자는 나를달래느라 이번에 이사할 때는 모든짐을 남편이 도맡아 싸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배가 아파 이사 갈 준비도 제대로 못하더니 이사하기 전날 복막염이 되어 입원하는 바람에 나는 밤새며 수퍼마켓에서 상자들을 가져다 짐을 싸며 친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이사 했다.

이사 당일에는 학교로 타고 간 차가 주차위반 티켓을 받기도 하고, 정신없어 교실에 두고 나온, 돈 든 가방을 분실 당하기도 했다. 이사 후에도짐정리에, 남편 병원방문에 쉽지 않았다.

이 때 옮긴 집도 패밀리 하우스였는데 젊은 아들을 졸지에 교통사고로잃은 한인 주인의 위층에 사는 것이쉽지 않았다. 바깥분이 자주 시비를걸어와 이번에는 겨우 1년 살고 조용하고 앞이 툭터진 코압을 사서 이사했다. 침실 세 개가 전부 동남향으로밝고 푸른 숲이 바라보였다. 아파트앞에는 바로 버스 정류장이 있고, 성당, 도서관, 한국마켓 등이 모두 도보거리 안에 있었다. 딸들도 우리집 옆콘도로 이사를 왔다.

그곳에서 15년을 살았는데 위층에이사 온 중국인들이 자주 물건을 떨어뜨려 잠을 못 자겠다고 남편이 이사를 하자고 했다. 나이가 들어 이사하기 엄두가 안 나고, 딸들과 멀어지는 일도 정말 싫었다. 남편과 빚어진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져 이번 이사때는 참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2년만에 아파트가 팔리고 계약한 비치허스트 아파트의 주인이 그냥 살겠다는바람에 우리는 짐을 스토리지에 맡기고 딸네의 좁은 아파트에서 여름 두달을 머무르다 보니 피곤이 쌓여갔다.

결국 뉴욕에서는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뉴저지 친구 동네 에디슨부터 가보기로 했다. 칠월 말, 집을 와서 보던 첫날, 현재의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녹음이 우거진 작은 숲, 창가에 앉아있는 오리 한 마리(주인이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해 두고 간 목각 오리 세 마리 중 칠이 조금 벗겨진흰 오리)가 바깥 풍경과 어우러져 내가 마치 바다 밑 숲 속에 있는 듯해이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자리에서 주인에게“ 이 집을 다른 이에게 주지 말고 제게 주세요.”라고 했다.

남편의 결정으로 이사를 해서 잘못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을 늘갖고 살았으면서도 그 믿음도 잠시자리를 떠나 남편과 스스로를 너무나힘들게 한 것 같다. 내가 이사를 안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사 온 이 집을 내놓은 시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았을 수도있었다고 자위를 한다. 사필귀정이란이런 때 쓰는 말일게다.

<정정숙/전직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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