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아남은 나무

2017-09-08 (금) 홍성애/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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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살면서 2001년 9월11일, 월드트레이드센터(WTC) 테러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날의 악몽같은 장면을 지금도 상흔처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테러공포를 느껴야하는 삶으로 변했다.

나는 폭삭 주저앉은 그 자리에 2014년에 완공된 국립 9.11기념관(The National 9.11 Memorial Museum at the World Trade Center)을 찾았다. 그 끔찍했던 정경이 되살아나는 게두려워, 전 세계에서 뉴욕을 방문하는 자들의 필수적 명소가 된 이 곳을 나는 이제야 찾은 것이다.

테러 당시 WTC 여러 건물에서 일했던 자들은 한 5만 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 총 2,983명이 희생됐다. 1993년 2월26일에 일어난 그 지하주차장 폭파사건의 희생자를 포함해,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이 기념관은 밝게 웃으며 찍은 고인들의 생전 사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각자마다 많은 사연을 안은 채 가족과 사랑하는 자들의 애끓는 애도속에 그들은 우릴 바라본다.


육중한 철기둥도 엿가락처럼 휜 엄청난 폭파속에서 사람의 목숨은 얼마나 무기력했을까? 여기 저기 전시된 건물의 처참한 잔해들, 문드러지듯 파손된 마지막 탈출계단, 테러당한 비행기속의 승객들, 승무원들을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여러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퀼트들… 전시장엔 참혹했던 당시의 잔해와 함께 희생자들을 기리는 애틋한 마음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리고 소방차 엔진 3가 상처투성이로 전시되어 당시의 기막힌 상황을 보여준다. 당일 사고현장 부근에 있던 이 소방차엔 전날 임무를 마친 11명의 소방관이 타고 있었다.

급박한 콜에 호응, 현장에 곧장 달려가 구조작업중 북쪽타워의 35층에서 전원이 산화했다고 한다. 가슴이 얼얼해온다. 자기 임무에 너무나 충실했던 용감한 이들에게 깊은 존경으로 애도를 표한다. 아, 왜 인류는 역사적으로 줄곧 잔인한 행위를 멈추지 않는지!종교간의 심한 갈등, 정치이념의 극심한 대치, 자기 국익만 추구하는 이기적 행위는 인류사회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항상 전쟁상태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 그루 나무가 있었다. 그라운드제로 근처에서 일하던 현장 일꾼들이 이 나무를 발견했을 때 가지가 불에 타고 뜨거운 재를 온통 뒤집어쓰고 신음하고 있었다. 수목의사들, 나무를 사랑하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이 나무 살리기에 매달렸다.

다른데 옮겨진 나무는 정성어린 치료와 보살핌에 보답하듯 살아났다. 생명력을 회복하고 새 가지와 새 잎을 돋우며, 기념관 밖, 원래 폭파된 건물자리에 만든 큰 풀(pool)옆에 다시 이식되어져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남은 나무(The Survivor Tree)’라는 푯말을 달고 서 있다. 찾아오는 모든 방문객들의 사랑과 감탄을 받으며…나는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외쳤다. “씩씩한 나무야! 살아나서 정말 고맙고 축하한다!” 그 나무를 사랑스럽게 쓰다듬는 제스처를 했다. 옆에서 보던 여인이 동조하듯 미소를 보냈다.

우리도 이 나무처럼 인생여정의 온갖 역경과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하게 뚫고 살아남아 우리가 사는 공동체, 사회, 나아가 모든 인류에 조금이라도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아서 궁극적으로 평화에 기여하는 일에 힘써야겠다고 굳게 다짐해본다.

“용케 잘 살아남은 강인한 나무야, 내년 봄 싱싱한 생명력을 뿜으며 온 몸으로 하얀 꽃을 가득 피울 때 다시 널 보러 올께!”

<홍성애/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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