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선약수(上善若水)와 중용 (中庸)

2017-01-20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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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공자의 가르침 중에 사람의 바람직한 성품과 행위를 가리키는 유명한 두 마디가 있다면 상선약수와 중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노자는 자연의 순리를 도(道)라고 가르쳤다. 자연의 순리(順理)를 따르는 삶이 행복한 삶이요, 순리를 행하는 정치를 가장 좋은 정치로 생각했다.

이 단순한 이치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 예가 물이다.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이리저리 갈라져 흐르지만 결국에는 강을 이루고 마침내 모든 것을 포용하는 큰 바다를 이룬다. 이런 물의 성질에서 노자는 도의 큰 뜻을 깨닫고 이를 상선약수(上善若水)로 표현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삶이 물과 같을 수 있을까? 높은 곳에서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를 수 있을까? 오만과 편견으로 채워진 우리의 의식과 행위가 과연 자신을 낮추고 항상 겸손하게 이웃을 대할 수 있을까? 정치와 경제와 이념의 작은 견해 차이가 이웃과 친구와 심지어 형제를 가르는 분위기 속에서 노자의 가르침은 낡아버린 빈 말이 아닐까?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경쟁사회 속에서 물처럼 살다가는 실패자로 매장당하는 것은 아닐까? 노자의 가르침과는 먼 거리에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요, 우리가 사는 사회가 큰 바다는커녕 한 강물도 이루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는 것이 현실인데, 물과 같이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 한 친구가 보낸 메시지에 “별은 어두울수록 빛난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어두울수록, 분열과 갈등이 심해질수록, 상선약수 (上善若水)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드레즈덴 대학에 갔을 때 한 교수의 집에 초대를 받아 하루 저녁을 독일 친구들과 같이 지낸 적이 있다. 같이 초대된 영국 교수가 가는 도중 한마디 충고를 했다. 독일인 가정에 갔을 때는 이차대전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만나서 어떤 주제는 피해야 하고 어느 선은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좀 불편했지만 이해 할 수는 있었다.

미국이나 한국이 독일보다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주제든 제한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이었는데…, 요즈음에는 그런 생각에 점점 자신이 없어져 간다. 트럼프와 힐러리, CNN과 FOX 뉴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서둘러 브레이크를 거는 우리 집사람이 고맙기는 하지만, 이거 무엇인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대답은 간단하다.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 매체들의 편파성과 소위 소셜미디아 (Social Media)들의 검증되지 않은 허위 뉴스에 우리의 견해가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받아왔고, 이에 따라 우리의 의견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편이 하는 것은 모두 옳고 다른 편이 하는 것은 모두 그를 수 있는 것 일까?

이런 극단적인 생각이 우리의 올바른 판단을 막고 우리 사회를 편 가르는 독버섯이 아닐까? 이쪽에도 옳은 것이 있고 저쪽에도 옳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여유로운 생각을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CNN도 FOX도 아닌, 나 자신의 견해를 바로 세울 수는 없는 것 일까?

공자의 중용의 도(中庸之道)는 우리에게 어느 편이든 극단적으로 기우는 것을 경계한 가르침 이다. 중용의 도를 따르려면 우선 생각의 흐름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지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듣고 보는 것들이 어떤 맥락에서 옳고 그른지를 바르게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노력을 하기 싫은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있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모두 덕이 된다. 공자님은 이런 사람들을 소인 (小人)이라고 불렀다. 신문에 나왔다는 것이 곧 나의 의견이 되어서는 안될 말 이다.

우리에게는 이상도 필요하고 실용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실용을 희생하게 되고, 실용만 따르다 보면 이상 없는 사회가 되고 만다. 이상을 실용적으로 실천하는 정치를 중용의 정치라고 본다면, 그 정치의 주체요 바탕인 시민들의 판단과 행위가 중용의 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자기가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장점과 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 때문에 갈라진 이웃과 형제들을 화해시키는 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통합과 화해를 위해 자기와 다른 의견이나 정책들도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 시민의 참된 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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