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심은 천심

2016-11-02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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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2대왕 티베리우스는 어느 날 동굴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굴입구가 붕괴되면서 몇몇 시종이 낙석에 깔려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혼비백산 달아났다. 그러나 세아누스는 자기 몸으로 티베리우스를 감싸 떨어지는 돌들로부터 그를 구했다. 그 후 세아누스의 세력은 점점 증대, 막강한 권력과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가 티베리우스에게 설사 해로운 진언을 하더라도 티베리우스는 무조건 그를 신뢰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지금 한국을 뒤흔들고 있는 초대형 게이트의 비선실세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이 바로 이런 관계가 아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부모를 잃고 정신적으로 힘들 때 위로로 시작된 인연이 박대통령이 선거전을 치를 때, 또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면서 그 결과가 급기야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대통령은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박정희 정권때 많은 문제를 일으킨 영세교 교주 최태민으로부터 신기를 물려받은 딸 최순실은 그동안 대통령의 연설문수정, 청와대 인선문제, 심지어는 외교문제까지 개입하는 등 국정을 농단해 왔다. 이로 인해 온 국민이 충격과 허탈감에 빠져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의혹으로 “탄핵해야 한다” “하야해야 한다” 등을 외치면서 대대적인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초고속 성장을 극찬받던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실추되는 망신을 당하고 있다.


지도자가 신탁에 의지해 나라를 운영하다 문제가 된 사례는 고대에서도 볼 수 있다. 기원전 560년경 소아시아 뤼디아의 마지막 왕 크로이소스는 “그대가 할뤼스강을 건너면 큰 왕국을 건설하리라”는 델포이의 신탁에 고무돼 할뤼스강을 건너 페르시아 제국으로 진격하다 페르시아 왕 퀴로스에게 참패하여 그토록 강하던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된다. 하지만 그는 화형을 선고받고 장작더미에 올려졌는데 잘못을 사죄하고 퀴로스에게 용서를 받았다.

무속인의 도움을 얻어 정치를 하는 사례는 오늘날도 계속 이어져 대통령들 중에는 문제가 있으면 흔히 역술인을 찾는 경우들이 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부인 낸시여사도 자주 역술인을 찾았다고 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처에서 사슬에 얽매어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사람들 이상으로 노예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신과 철학에 정신의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잘못은 자신이 한 나라와 국민을 책임진 대통령이라는 점을 잊은 것이다. 그리고 국정전반을 전적으로 무속인 최씨에 의존해 운영했다는 점이다. 이번 최순실게이트는 닉슨대통령의 워터게이트,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퍼게이트 사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참담한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국정과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중대한 범죄다.

이번 사태로 한국은 청와대 비서진 전원 사퇴, 주인공 최순실씨 구속,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모두 의혹과 불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 그 어떤 것도 철저히 속은 국민들의 배신감과 분노를 가라앉히기 어렵고 받은 충격과 상처를 쉽게 회복시키기 힘들 것이다.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위기 때마다 국민들의 힘으로 잘 극복해 왔다. 이번 위기도 국민들의 지혜와 힘으로 잘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국민 앞에 모든 진실을 털어놓고 진정어린 사죄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고 훨훨 타오르는 혼란의 불길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안 된다면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 평민으로 돌아가야 한다. 임금은 그릇이고 백성은 물인데, 그릇이 깨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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