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노년기

2016-10-24 (월)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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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브라우닝은 “젊은이들이여 나와 함께 늙어가자. 더 좋은 것은 미래에 있다.”고 읊었다. 늙는 것이 더 아름답고 좋은 과정임을 말하는 것이다. 나를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은 말도 행동도 우아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년기를 보낼 수 있다. 미지(未知)의 미래이지만 하나님의 품에 안긴 사람은 밝은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에 본인도 행복하고 남들이 보기에도 우아하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너를 안아주고 백발이 되기까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너희를 지었은즉, 안아줄 것이요 품어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이사야서 46:4) 사랑스런 아기를 엄마가 품에 품고 보호하듯이 하나님은 자기를 믿는 자를 백발이 되기까지 보호하여 주신다는 약속이다. 인생이라는 나그네길을 신이 동행한다는 것이다. 장수(長壽)를 복이라고 하자만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는 장수는 오히려 고통의 바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믿음이다.

나는 아름다운 노년기를 위하여 노인 십계(老人十戒)를 지어 보았다. 제1은 은퇴하지 말지니 죽는 날까지 일할 수 있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느니라. 제2는 쌓아두지 말지니 잘 버릴 줄 알아야 홀가분하니라. 제3은 대접 받는 것을 기뻐하지 말지니 인간의 자존심은 1대 1의 관계서 성립되느니라. 제4는 늙어 보이지 않으려고 꾸미지 말지니 자연스러움이 가장 아름다우니라. 제5는 중얼거리지 말지니 자신에게도 듣는 이에게도 보탬이 안 되느니라. 제6은 지난날의 괴로움을 되새기지 말지니 되도록 즐거웠던 추억을 기억할지니라. 제7은 젊음을 시기하지 말지니 백발은 노인의 면류관이니라. 제8은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지니 되도록 ‘내 생활’을 즐길지니라. 제9는 사후(死後) 걱정을 하지 말지니 그대는 아직 싱싱하게 살아있느니라. 제10은 보이는 것은 이제 단념할지니 보이지 않는 것, 즉 천국과 영생을 바라볼지니라.


노년기(senesence)와 노쇠(senility)는 구별되어야 한다. 노화와 늙는 것은 다르다. 노화는 생리적인 과정이지만, 늙는 것은 정신적인 상태이다. 노화현상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여기에 대한 정신적인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새파란 삼십대도 그 정신이 늙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을 늙게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다. 70을 지나도 인생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돌리고 있는 싱싱한 노인도 많다. 그런 뜻에서 인간이란 자기가 느끼고 있는 정도 밖에 늙지 않는다. 자기가 많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늙은 것이며, 늙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늙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노년기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65세부터 75세를 ‘노년 개시기(開始期), 75세부터 85세를 ‘백발 청춘기’ 즉 인생의 가장 원숙한 맛을 즐기는 꽃피는 시절, 85세 이후를 ‘전진하는 노년기’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성서에서 나온 용어로서 성경에는 “해를 거듭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말의 회춘(回春)의 개념과 비슷한데 새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런 유대인의 발상은 “사람은 노년기에도 성장한다.”는 사상이다.

많은 노인들이 그 주름살 속에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쇠하여 가는 피부와 육체 내부에서 그들은 지금도 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인이 자기의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일 그대에게서 꿈이 사라졌고, 일에도 취미생활에도 흥미가 없고, 지난 날을 생각하며 한숨짓는다면 그대는 드디어 늙은 것이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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