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뢰와 존중

2016-10-15 (토) 박미경 편집실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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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의 시의회 미팅에 9살 어린소녀 가 단상에 올랐다. 9살짜리 소녀 지애나 올리펀트는 청중을 향해 크고 당당하게 자신이 최근 보고 느낀 흑인 차별에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어떤 기분인지를 말하 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는 피부색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과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게 싫다.”며 조심스 럽게 운을 뗐다. “우리는 흑인이고, 이런 기분을 느껴서는 안 된다. 우리 는 시위에 나설 필요가 없어야 한다.

우리를 잘못 대하고 있는 것은 당신 들이다. 우리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 고 말문을 이어간 어린소녀는 결국 그렁그렁한 눈물을 떨구고야 말았다. “엄마, 아빠가 살해되고 우리가 더 이상 그들을 볼수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며 “엄마, 아빠를 무덤에 묻고 눈물을 흘려야하는 것 도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엄마, 아 빠가 우리 곁에 있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 소녀의 연설은 미디어와 SNS 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수많 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날 시의회 미팅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키스 스캇 사건 이후 날 로 격해지는 시위의 해결책 일환으 로 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키스 스캇은 초등 학생 아들의 스쿨버스를 기다리다 경찰의 검문을 받고 자신의 승용차 에서 내리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 을 거뒀다. 당시 경찰은 스캇이 총 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후에 공개된 차량 블랙박스와 경찰의 바 디캠에는 그런 모습은 담겨있지 않 았다. 더구나 스캇의 가족들은 그 에겐 장애가 있으며 당시 책을 들 고 아들의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시민들 은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했다는 논란이 계 속됐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Black Live Matter’ 시위가 날로 격해지자 시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유색인종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경찰 공권력 남용은 미국만의 문제 가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쌀값 21만원 인상 공약을 이행하라는 요구를 하기위해 민중궐기에 나섰던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317일을 사경을 헤매다 숨을 거뒀다.

하지만 고인을 죽음으로 내 몬 경찰은 사과를 거부하고, 병원은 사인을 외인사에서 병사로 둔갑시켰으며, 더 나아가 검찰은 부검의사를 밝히고 있다. 경찰은 병력을 동원 해 장례를 마친 시신을 거두어 가기 위해 장례식장과 병원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며, 유족과 시민들은 공권 에 의한 타살이라며 대치하고 있다.

고인을 애도하며 마지막 가는 길에 명복을 빌고 경건해야 할 빈소는 슬픔보다 긴장과 분노가 거세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으로써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도덕적 소양과 양심의 소리는 빛을 바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은 물대포에 의해 유린되고, 이 기적인 권력에 의해 약자의 생명은 하찮은 것으로 경시되고 있다.

신상필벌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주체가 비정상의 권력을 남용한다면 그 사회는 멍들고 배타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묵묵 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 들에게 침묵은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다.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는 토마스 제퍼슨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그들은 힘을 모으고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서로 간의 신뢰와 존중이 더 필요한 때가 아닐까!

<박미경 편집실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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