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금 변기

2016-09-2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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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미술관으로 황금 변기를 보러갔다. 아니, 사용해도 된다고 해서 로툰다 5층 유니섹스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섰는데 30분을 기다려 보니 ‘여기서부터 한시간’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18K 황금으로 만든 수세식 변기는 이태리 조각가이자 행위 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55)의 ‘아메리카(America)'라는 작품으로 ‘경제적 불균형’으로 상위 1%의 사치함을 풍자했다고 한다. 이 황금 변기에 관람객들은 소변도 보고 대변도 볼 수 있다. 이 황금변기를 사용하기 위해 관광객 커플, 노인 부부, 10대 소년을 동반한 패밀리, 혼자 온 20대 여성 등등 다양한 인종에 각각의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달팽이관처럼 올라가는 로툰다 갤러리는 다음 전시작 설치를 위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별관 타워 상설 전시관만 열려있어 평소 25달러 입장료가 이 날은 15달러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변기이다 보니 가방에 집어넣어갈 까봐 셀폰 외에 화장실 안에 아무 것도 못 들고 가는 것은 물론 사용직후 관리직원이 들어가 황금 변기가 제대로 있는 지를 체크했다. 또 실제로 용변을 볼 수 있게 하다 보니 15분 간격으로 청소원이 세제를 들고 들어가 청소를 했다.그야말로 ‘금지옥엽’ 변기였다.


‘도대체 왜, 무얼 기다리고 있는 거냐’며 동행한 딸의 푸념에 점잖은 척, 뭔가 아는 척 하면서 궁색한 말을 거창하게 했다. 속으로는 황금을 탐하는 속물로 보일까 염려하면서.
“마르셀 뒤샹의 ‘샘’ 알지? 남성용 변기 하나를 뉴욕 그랜드 센트럴 갤러리에 가져다 놓았잖아. 그 샘이 미술사에 일으킨 영향은 어마어마했지? 이 황금변기는 그보다 더 진보된 거야. 샘은 보기만 하지만 아메리카는 직접 사용하여 관람객이 작품과 하나가 되잖아. 현대미술사에 우리도 일조하는거야.”

1917년 뉴욕 제1회 앙데팡당 전시회에 뒤샹은 소변기를 ‘샘( Fountain)’이라 제목을 짓고 R. Mutt (위생기구상 이름)라고 서명하여 출품하자 운영위원들은 경악했다. 결국 변기는 전시회 동안 전시장 칸막이 뒤에 폐기되었으나 뒤샹은 잡지를 통해 ‘평범한 생활용품이 새로운 이름을 얻으면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낸다’고 반박했다.

프랑스 출신 뒤샹(1887~1968)은 1915년 뉴욕에 정착해 살면서 탁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거꾸로 매달고 이것도 예술이라 했다. 이렇게 ‘레디메이드(ready-made)란 용어와 개념이 정착되어 갔다.

‘현대미술은 무엇인가’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샘과 레디메이드는 이후 뉴욕 모마에서 전시되며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붓과 캔버스, 물감 대신 일상의 물건이 미술 소재가 될 수 있고 이 물건들은 원래 기능이 아닌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는 점이 누구에게나 쉽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대중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발칙한 아이디어가 너무 재미있다. 뉴욕에 사는 좋은 점이 이런 것이다. 그래서 특이하고 획기적인 전시나 공연은 웬만하면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날 본 황금 변기는 연결 급수관, 저수조 외부, 용변구 내부와 외부, 변기손잡이, 변기깔판 등 변기라고 생긴 것은 모두 번쩍이는 황금빛이 찬란했다. 물을 내리니 변기 속까지 황금이라 황금빛을 따라 흐르는 물살도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쉽게 떼어 도난당할 수 있는 상단 커버만 없었다.

그런데 작품 ‘아메리카’ 와 하나가 된 순간 “아, 차갑다”하는 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보기에는 아름다운 황금이 차갑고 냉정한 것이 마이다스 왕의 황금 손과 다를 바 없었다.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생경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리지아의 왕 마이다스(Midas)는 엄청난 부자인데도 디오니소스 신에게 자신의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소원한다. 술 취한 신이 허락하여 마이다스는 정원수, 가구 할 것 없이 황금으로 변하자 기뻐한다. 그러나 먹으려던 음식은 물론 사랑하는 딸조차 황금으로 변해버리자 그는 신에게 소원을 취소해달라고 간청한다. 본래의 손으로 돌아온 마이다스는 다시는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마이다스 왕의 심정처럼 차가운 황금 변기에 앉아본 사람들은 1%의 부에 대한 욕심과 부러움을 버리지 않았을까.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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