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자의 계절!’

2016-09-19 (월) 연창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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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추분(22일)이 다가온다. 덥고 추운 것도 추분과 춘분까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침저녁 기온이 차갑게 느껴진다. 추분은 하루 가운데 해질녘과 비슷하다. 해질녘은 낮의 왕성한 활동을 갈무리 한다. 고요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밤도 준비하는 시간이다. 밝음과 어둠의 경계. 그 자리에서 한낮과 한밤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다. 이처럼 추분도 여름철 몹시 왕성한 기운 가운데 알짜배기만 거두어들인다. 가을과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기인 셈이다.

추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 일사량이 같다는 날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지만 태양이 진후에도 어느 정도 잔광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낮이 밤보다 조금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점점 밤의 길이가 길어지기 마련이다.

추분이 다가오니 고추잠자리가 날아든다. 코스모스도 산들산들 춤을 춘다. 하늘은 더 높아 보인다. 그늘에선 서늘하지만 햇볕에 나오면 아직도 여름인 듯 착각이 든다. 여름철 더운 기운도 차츰 수그러든다. 아직은 그 기세가 살아있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니 공기도 건조한 느낌이다.


옛말에 ‘봄바람은 처녀바람, 가을바람은 총각바람’이라 했다. 봄에는 처녀가 가을에는 총각이 바람나기 쉽다는 의미다. 여자들은 산들거리는 봄바람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음도 싱숭생숭해진다. 서늘한 가을바람은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고독한 마음으로 가을도 타게 만든다.

봄바람과 가을바람의 느낌은 다르다. 새싹이 움트는 따스한 생동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이 봄바람이다. 가을바람은 성숙하게 마무리 짓는 기운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남비추 여희춘(男悲秋 女喜春)이라고도 한다. 남자는 가을을 슬퍼하고 여자는 봄을 기뻐한다는 뜻이다. 남성은 가을에, 여성은 봄에 감수성이 풍부해진다는 의미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다. 봄에는 온갖 꽃이 피니 여심이 설레지 않을 수 없는 계절이다. 가을은 찬바람이 부니 우수에 젖은 남자가 멋있어 보이는 계절이란 의미다. 봄을 타는 여자는 소녀나 중년보다는 아가씨일 게다. 가을을 타는 남자는 소년이나 청년보다는 중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봄에는 화사함의 빛을 내는 젊은 여성들이 돋보인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 못지않게 마지막 열정을 다하는 중년 남성들의 멋있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띄는 게 아닌가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인생에 비유하면 가을은 중년이다. 가을이 남자의 계절인 이유는 중년의 남성이 멋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잖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고 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은연중에 중년여자보다는 중년남자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젊은 남자보다는 젊은 여자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여자나 남자나 상관없이 중년이면 여자보다 남자의 주름살이 멋있다고 여기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가을엔 이유 없이 우울해지는 남자들이 많아진다. 주로 일조량의 변화에 따른 계절성 우울증이 원인이다. 해가 짧아지면 남자의 호르몬에도 변화가 온다. 뇌의 갑상선 호르몬이 줄고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증가한다. 그래서 우울함에 대한 면역은 약해지고 기분은 자꾸 가라않게 된다는 것이다.

가을이면 남성호르몬 분비가 많긴 하지만 그 양이 나이가 들수록 줄어서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한다. 일조량 부족으로 생체리듬이 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지고 전에 없이 생각도 많아지는 이유다. 이런 현상이 남자들을 가을남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가을을 탄다’고 말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밤과 낮이 같아진다는 것은 가을에 접어든다는 의미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설렘과 열정을 뒤로하고 흘러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도 불쑥 찾아온다. 어느 새 다가온 가을의 문턱을 생각하니 눈물이 울컥한다. 수확의 계절에 성취감보다는 공허감과 허무를 느낀다. 어느 덧 중년남자로서 가을을 타는 것일까. 진정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보다.

<연창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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