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드라마’로 흔들기

2016-09-16 (금) 민병임 논설위원
크게 작게
북한이 지난 9일 최대 위력의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에 13일 열린 한미6자회담 수석대표 공동기자회견은 유엔 안보리 조치와 독자제재 등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정부는 이미 지난 1월의 4차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첫 대북제재법을 3월에 전격적으로 채택했고 주요자금 세탁 우려 대상국 지정과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을 포함한 개인과 기관들에 대한 인권제재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번에 나온 북한 압박 조치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국무부가 상ㆍ하원 외교위원회에 보낸 대북정보 유입 보고서에 나온 값싼 대량 정보통신 수단 이용이 그것이다. 즉, 한류 드라마와 미국 영화 등을 북한에 최대한 유통시켜 밑바닥으로부터의 근본적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의 여러 제재와 인권에 대한 제재가 있었지만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북한은 왜 남의 나라 일에 참견하느냐며 더욱 공격적으로 나왔고 어떤 강화된 제재를 가하든 앞으로도 별로 사태가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여전히 다음의 미사일이나 핵실험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리 없는 정보주입 전략은 잘 만하면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주민들이 검열이나 제한 없이 대량정보 통신수단을 접하는 것으로 라디오, 휴대전화, USB, DVD, 태블릿 PC 등이 있다. 미국내 대북 인권단체를 통해 한국 드라마, 미국 드라마, 외국 영화 등이 담긴 이 작은 통신수단을 대량 유통시켜 자연스레 외부 세계를 보여주고 느끼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한류 붐을 체험한 바 있다. 1990년대 중후반 시작된 TV드라마, 대중음악 등은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켰고 한국어 배우기와 한국 관광러시 효과를 가져왔다.

작년에 나온 김수현ㆍ전지현 주연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주인공 도민준ㆍ 천송이 커풀의 데이트 장소인 서울 타워 식당과 공중부양 키스 장소인 쁘띠 프랑스를 방문케 했다.

또 올해 봄 송중기ㆍ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유시진 대위와 강모연 의료팀장의 데이트 장소인 그리스 자킨토스섬 나바지오 해변 관광과 함께 군부대 막사인 한국의 태백 탄광지대와 정선, 경기도 파주 지역까지 유명하게 만들었다.

다수의 한국인들도 2000년대 초반 한국 드라마의 해외 로케이션 붐이 일면서 드라마 속 장소를 찾아 중국, 일본, 홍콩, 필리핀, 베트남 등을 관광한 바 있다. 물론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수시로 등장하는 뉴욕의 인기는 지금도 하늘을 찌른다.

지금도 뉴욕 관광객들은 센트럴 팍에서 영화 ‘나홀로 집에2 ’나 ’뉴욕의 가을‘, 엠파이어 빌딩에서 ‘킹콩’, 자연사박물관에서 ‘박물관은 살아있다’, 플랫아이언 빌딩에서 ‘스파이더 맨’을 떠올리고 드라마 ‘섹스 앤드 시티’ 주인공들이 브런치 먹는 식당 사라베스, 매그놀리아 베이커리를 찾아간다. 이야기에 빠져들면 주인공이 간 곳에 가고 싶고 주인공이 먹고 입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것이다.


신한류는 다시 활활 타올라야 한다. 독창적이고 다양한 재미를 주는 드라마나 영화가 더욱 많이 제작되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나 DVD, 셀폰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야 한다.

서서히,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자유로운 서구문물과 사고방식에 눈뜬 북한 주민들은 가장 먼저 자신들이 무릎 끊고 숭배하는 김씨 왕조에 대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돌아보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개발시대에 김일성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 뚱뚱한 몸집까지 그대로 답습한 김정은이 고인이 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등에 업고 통치하는 것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망치로 벽을 깨부수고 비무장 지대의 철조망을 걷어내게 하는데 한류 드라마가 한 몫을 해야 한다.

중국 병법서인 육도삼략(六韜三略)에 이런 말이 나온다. “부드러움이 능히 굳셈을 제어하고 약한 것은 능히 강함을 제어한다”. 총칼보다 부드러운 감성이 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피를 부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이런 정책은 얼마든지 이용해도 좋다고 본다.

<민병임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