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상은 창의성을 흔든다”

2016-09-13 (화)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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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에게 국민체육진흥공단을 비롯한 각 기관과 단체에서 제공하는 보상금 총액은 개인 당 무려 3억~4억에 달한다. 서울 변두리 아파트 한 채 값이다. 여기다가 평생연금도 나온다. 금메달리스트에겐 매월 100만원, 은메달리스트에겐 75만원, 동메달리스트에겐 52만 5000원씩 주어진다. 남자 선수들의 경우는 메달 색과 관계없이 병역 특혜가 추가된다.

적극적 보상 정책을 펼치는 당국자들은 이번에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풍성한 돈 잔치를 했다. 함께 4년 동안 훈련소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무메달 선수들은 패잔병처럼 머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너희들 잘 봐두어라. 명예가 있는 곳에는 돈이 보상으로 따르는 법이다.’라고 상업주의를 각인시키는 것 같았다.

영국은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2위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세계가 주목하고, 나라 전체가 축제의 기쁨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영국은 히드로 공항에 개선한 메달리스트에게 보상금을 주지 않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뽑혀 올림픽에 출전한 명예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졌다고 그들은 판단했다. 순수하게 누리는 명예가 돈의 힘보다 더 가치 있고, 봉사정신 안에 참 기쁨이 있다고 영국인들은 믿었다.


‘돈이 없으면 IQ나 창의성이 떨어진다. 후한 보상이 창의성 향상이나 동기부여를 일으킨다’는 상업주의자들의 달콤한 공리주의적 주장은 옳지 않다. 악성 베토벤의 주옥같은 명작은 그가 최악의 고난과 가난의 터널을 지날 때 탄생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한 번은 ‘러스키 비에스트니크’ 출판사로부터 거금 4,500루블의 선금을 받고 작품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는 쓰던 원고를 몽땅 쓰레기통에 집어 버리고 출판사에 편지를 썼다. “글 빚을 지는 작가가 더 이상 되고 싶지 않습니다. 미리 대가를 받고 하는 집필은 나의 창의성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나 자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욥의 하나님 사랑과 경외심은 널리 소문이 날 정도로 특별했다.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기뻐하여 칭찬과 함께 복을 내려 주었다. 이때 사탄이 하나님을 찾아와 내기를 건다. “욥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욥에게 베푼 축복을 거두고 저주를 내려 보십시오.” 제아무리 믿음 좋은 욥이라도 하나님에게 보상받는 것이 있으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사탄은 단정했다.

질투의 화신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욥의 신앙의 가면과 위선을 벗겨 망신을 주고 싶었다. 시험대에 오른 욥에게 가혹한 고난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하지만 욥은 한 번도 하나님이 불의 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다. 욥의 하나님 사랑은 보상이나 대가와는 관계없는 순수한 사랑임이 판명되었다.

1973년 키신저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지명 받은 월맹 측 대표 레 둑 토는 수상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모국에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T.S. 엘리엇은 처음 노벨문학상 수상을 사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벨상은 장례식으로 가는 입장권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뒤에 뭔가를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리더라면 창의성을 흔드는 보상을 경계하라.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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