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두옹 (白頭翁)

2016-09-10 (토) 최원국 비영리기관 근무/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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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고향 집 뒤에는 낮은 동산이 있었다. 산자락 동남향에 있는 우리 집은 봄이면 울타리를 따라 개나리꽃과 하얀 백합이 피었다. 봄철 한가할 때는 나는 친구들과 뒷동산에 올라 칡도 캐고 진달래꽃도 꺾어 집으로 가져와 화병에 꽂기도 했다. 칡을 캐다보면 주위 나무 사이 후미진 곳이나 묘 근처 잔디에서 할미꽃이 피어 있었다. 머리도 쳐들지 않고 수줍은듯 다소곳이 봉우리를 아래를 향하여 핀 할미꽃을 보면 애련하기 까지 했다

할미꽃은 눈에 뜨이거나 시선을 끌 만큼 화려한 꽃도 아니다. 우리의 삶 같이 그 주위에 맞추어 가며 평범하게 피는 꽃에 불과하다.어느 날 나는 할미꽃에 대한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할미 꽃을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 나는 할미꽃에 그렇든 슬픈 사연이 담겨있는 줄도 몰랐다 우리 삶 속에 있는 사연이라 그런지 할미꽃 전설은 웬 지 지금까지도 잊어버려 지지않고 마음 한구석에 쓸쓸하게 자리잡고 있다.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어린 딸 셋을 낳은 혼자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며느리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였다.남편을 일찍 여읜 할머니는 어린 세 손녀들을 애지중지 정성껏 길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세 손녀는 장성하고 결혼을 하였다, 손녀 셋을 떠나보낸 빈집에 의지할 곳 없는 할머니는 너무 외롭고 쓸쓸하여 부잣집으로 시집간 큰 손녀 집에 의지하고 싶어 기쁜 마음으로 찾아 갔다


반갑게 맞이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 손녀네 집에서 얼마를 같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는 자기가 있는 것에 불만을 지니고 나갔으면 하는 손녀 부부의 말을 엿듣게 되었다. 할머니는 너무 실망하여 늦은 밤중에 손녀의 집을 몰래 빠져 나온다.
그 뒤 할머니는 장사하여 돈이 많은 둘째 손녀 집으로 찾아 갔다 '둘째 손녀만은 나를 푸대접하지 하겠지,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길렀는데' 하며 기대를 걸고 찾아 간 것이다.

그러나 둘째 손녀는 노골적으로 냉대를 하며 첫째 집에서 안 있고 왜 여기로 왔느냐며 셋째 손녀 집으로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할 수 없이 가장 멀리 있는 근근이 살고 있는 선비 남편과 착한 셋째 손녀 집으로 간다, 제대로 끼니도 챙기지 못한 할머니는 셋째 손녀 집 근처에 와서는 몸이 쇠잔했고 무사히 도착 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조금 쉴 작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날 밤에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이튿날 셋째 손녀가 집 근처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발견했다. 셋째 손녀는그간 할머니의 사연을 알고는 슬퍼하며 근처 양지 바른 곳에 정성껏 묘를 썼다
이듬해 봄 그 묘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었다. 셋쩨 손녀의 집을 향하여 고개숙인 꽃봉오리는 할머니의 허리같이 굽혀 있었고 흰 술은 꼭 할머니의 헝클어진 길고 흰 머리카락같았다. 그리하여 꽃의 이름은 ‘할미꽃’ 또는 ‘ 백두옹(白頭翁)’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두옹은 손녀들을 끔직이 사랑했으면서도 불쌍하게 돌아가신 할머니의 애틋한 전설이 담긴 꽃이다. ‘사랑의 배신’ 또는 ‘슬픈 추억’ 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꽃은 진한 자주색이고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기도 하고 한국의 전역 야산 자락이나 묘지 근처 에서 자생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만 알고 은혜를 모르고 사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할미꽃의 가슴 아픈 사연은 옛날 이야기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 할머니처럼 슬하에 자식들을 두고도 늙고 병약한 몸을 의탁할 곳이 없어서 홀로 외롭게 지내고 계신 노인들이 많이 있다.
자기 직접 낳아 기른 자식들도 필요할때는 부모를 극진히 모시다가 어느 날 짐이 되면 모시는 일을 서로 미루어서 하는 수 없이 거처를 이 자식 저 자식네로 쫒겨다니는 노인들을 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일가친척 없는 고국으로 보내는 노인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얼미전에는 기동이 불편한 노 부모를 돌보지 않아 방에서 굶어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신 고려장이 아닌가 생각 했다. 또한 어린 딸을 둔 부부가 이혼 하면서 남편이 딸을 돌보게 되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후 남편은 새 부인을 얻어 장가를 갔다. 새 엄마는 남편 모르게 전처의 아이를 학대하여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끔찍한 사연 있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이 가슴 아픈 사연을 보면서 나는 할미꽃 전설이 생각 났다.
할미꽃에 대한 전설을 나에게 얘기 해주시던 할머니의 헝크러진 희 머리카락이 떠오른다 고향 뒷 동산에 가면 그 옛날의 할미꽃이 있을까? 보고 싶다.

<최원국 비영리기관 근무/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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