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의 이화여대 앞날에 희망을 건다

2016-08-25 (목) 장지윤 전 Seton Hall 대학교수/‘64 영문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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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무더운 올 여름, 한국의 이화여대생들은 총장퇴진을 외치며 농성 4주로 들어섰다고 한다. 여름방학에 뛰고 놀아야 할 이 열아홉 청춘들이 왜 죽자 살자 기를 쓰고 총장 나가라 하면서 끈질기게 격분하는가? 그 이유와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한국의 4.19 혁명은 필자가 이대 입학 직후 일어난 한국의 운명을 바꾼 학생의거였다. 이날 이화여대는 즉시 문을 닫고, 부통령 이기붕의 처로서 이대부총장이었던 박 마리아는 “우리 학생들은 데모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외쳤고, 뒤따라 김활란 총장이 금족령을 내렸다. 객관적 사고나 독립적 판단능력이 없어서인지, 또는 권력과 힘에 아부하는 식민지 노예근성의 교육 때문인지, 이대생들은 위대한 혁명대열에서 낙후된 치욕의 학교 역사를 자초했다.

4.19때 서대문에서 돈암동까지 걸어가는 동안 무참한 혁명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시위대는 서울신문사를 불태우고, 불붙은 소방차에 사이렌을 틀고 고속으로 서울거리는 누비며, 확성기로 “대한민국 만세” “이승만 부패정권 물러가라” “3.15 부정선거 규탄한다” 등의 혁명구호를 외쳤다. 길거리 시민들은 이를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그러나 나와 이대 친구들은 벌벌 떨며 나를 붙잡고 울었다. 나는 모종의 혐오감과 분노감을 느꼈다.


지금의 이대가 진통을 겪게 된 애당초 원인은 최경희 현 총장이 돈 장사를 위해 수준 낮은 커리큘럼으로 학생과 학교의 질을 저하시키는 행태를 학생들 몰래 벌려왔던 데에 있다. 학생들은 “총장님, 우리들과 대화해 주세요” 하는 현수막을 들고 소통을 애원했으나, 총장은 이를 외면했다.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하지도 않은 채, 200여명의 농성학생을 상대로 총장은 1,600명의 경찰을 교정에 불러들였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 졸업생 등 5,000여명 데모행렬은 최경희 총장 사퇴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최 총장은 학생대표와 만나자고 나왔으나 학생들의 총장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은 굳어진 뒤였다. 학생들의 눈에 최 총장의 일련의 행동은 일정때 정신대 위안부가 되어 황국을 ‘애국’하라고 학생들에게 부르짖던 김활란 총장을 연상시켰다.

2013년 6월3일 이래 교정으로부터 김활란 박사 동상철거를 요구해왔던 학생들은 총창 사퇴요구의 일환으로 김활란 동상에 계란 등을 던졌다고 한다.(참조문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활란-나무위키 https://namu.wiki/w/김활란: Jun 3, 2013 등)
과거의 우리와는 달리 오늘의 이대생들은 독립된 사고, 자율적 판단과 추진력을 갖춘 자신만만한 여성들이다. 그들은 두려움에 입각한 기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눈앞의 이익보다는 공익과 정의를 앞세운다. 젊음은(육체와 정신의) 변화를 환영하고 역사는 젊음의 편에 설 것이다.

오늘 이화여대가 겪는 시련은 산모의 출산 직전의 아픔과 같다. 고통 후에 올 영광이 약속되었으므로, 오늘의 고통을 잘 참고 견딘다. 그러나 나 어린 학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하루속히 교실로 보내는 것은 총장의 임무다. 그 임무를 위해 최 총장은 관용과 사랑으로 학생들의 의사를 받들어 속히 사퇴하기 바란다. 사퇴하는 길만이 지금 최경희 총장이 이화여대의 장래에 기여할 위대한 공헌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화여대 앞날에 희망을 건다.

<장지윤 전 Seton Hall 대학교수/‘64 영문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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