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과 다른 꿈을 꿔 본다면…

2016-08-25 (목) 민경수 장신대 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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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제임스 애덤즈는 1931년에 ‘미국의 서사시’란 책에서 ‘아메리칸 드림 (American dream)’ 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그 의미를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타고난 재능을 충만하게 실현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의 출생신분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그 성취에 따라 대접받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얼핏 보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큰 꿈을 꾸면서 열심히 노력함이 잘못일리가 있겠나? 오히려 높이 평가되고 확실히 보장받아야 할 덕목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위험한 추정이 깔려 있다. 자칫하면 건강한 삶과 고귀한 영혼을 죽이는 목표를 받아들일 수가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정은 ‘인간의 가장 큰 자산은 재능’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을 믿고 의지해서 무언가를 이뤄간다는 논리이다. 독창성과 상상력, 혁신적 사고방식을 결합하고, 거기에 기술과 노력을 보태면 어떤 학위든 무슨 사업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제 힘으로 목표를 달성하니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된다. (요즘은 ‘아메리칸 드림’이 이미 ‘브로큰 드림’이 됐다는 말들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강풍과 함께 흩뿌려지는 소낙비를 바라보며, 비록 미국에 살고 있지만 다른 꿈을 꿔 볼 수는 없는가 자문해 본다. 첫째로, 자신의 재능을 의뢰치 않고, 오히려 무지와 무능을 자랑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세상적인 자아를 부인하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유혹을 물리치며 사는 꿈을 꿀 수는 과연 없을까? 둘째로, 자신에게 지어진 인생의 짐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할 수는 없을까? 성령님을 좇아 행함으로 자기 십자가를 넉넉히 지고 갈 수는 없을까?


셋째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즐거워 할 수는 없을까? 잠깐이면 사라질 이 세상에서의 성취에 따른 세상적 보상을 기대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장차 올 영원한 하늘의 신령한 상급을 사모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의와 생명, 승리, 기쁨, 자랑, 영광의 썩지 않을 면류관을 눈앞에 그리며 꿈을 꿀 수는 없는 것일까?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에게 진정한 꿈을 주셨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크리스천 드림 (Christian dream )’이다. 이 꿈을 꿀 때, 우리 인생들은 잃어버릴 목숨도 찾고, 영혼을 얻게 되며, 나아가 하나님과 더불어 영광의 영생을 살게 된다. (마 16:24-28). 꿈을 꾸자. 세상과 다른 하늘의 꿈을 꾸어 보자. ‘아메리칸 드림’이 아닌 ‘크리스천 드림’을 꾸어 보자.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도 하늘의 위로와 기쁨과 생명이 넘치는, 천상을 사는 신령한 자들이 되도록 하자.

<민경수 장신대 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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