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와 인간

2016-08-20 (토) 이경림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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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종교의 관계는 그 역사가 매우 길다.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거의 같은 기간 일 것이다. 종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나라나 원시적 형태의 무속 신앙이 공통적이다. 인류가 발달하고 거기에 따라 종교도 발전하게 된다.

오늘날 21세기 현대에 이르러 종교는 나름대로 여러 형태로 정립이 끝났고 크게 대별하여 신이 있는 종교와 신이 없는 종교로 양분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종교가 신을 갖고 있는 반면 불교, 자이나교 등 소수의 종교에서는 신이 없다.그러나 각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구원을 추구하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어느 고명한 카톨릭 신학자가 종교, 신, 인간의 관계를 일목 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이 생각난다. 인간은 불안, 근심, 죽음 앞에 유한하고 이 유한성을 가진 인간이 무한한 능력과 힘을 가진 존재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무한성을 가진 존재가 있다고 믿고 그 존재에 인격을 부여하여 신이라 일컫고 종교라는 채널을 통해 그 무한성에 도달하려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무한성은 각 종교가 말하는 구원, 곧 불안, 공포, 근심으로 부터 해방 된 상태이고 이 무한성의 신을 향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려하는 것이 신이 있는 종교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신이 없는 종교인 불교나 자이나교 등에서도 위에서 말하는 구원에 도달하려면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지식, 경험, 지혜 등을 갖추었을 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불이 꺼져 있는 산 속의 집 앞에 선 인간은 불안, 공포 속에 집안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일단 안으로 들어가 방의 스위치를 키고 밝아진 방안을 보는 순간 불안, 공포, 근심은 순간에 사라지고 마음은 해방된 평화를 갖게 된다. 밝은 빛으로 인해 모든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종교가 유일신(monotheism) 사상을 배경으로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무한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각 종교의 경전들이 쓰여졌고 성직자들도 더 강화된 독선적 자세로 경전을 풀이하여 사람들에게 설교나 강론을 하니 일반 사람들도 독선적, 배타적이 된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독선적이고도 배타적인 자세는 인류 역사의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같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내에서도 서로 살륙을 하는 끔찍한 상황까지 만들게 되었다. 특히 이웃을 사랑하고 나아가 원수도 사랑하라는 성경의 내용과 크게 배치되는 역설적 종교인 기독교를 전세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믿고 있다.
오늘날 종교간의 대립을 보라. 얼마전까지도 대립되었던 신.구교간의 갈등,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전쟁, 그리고 기독교, 유태교와 이슬람교의 전쟁에 준하는 위기 상황 등이 따지고 보면 각 종교가 품고 있는 독선적, 배타성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종교의 문제점을 우리 인류는 어떤 식으로라도 해결 해야 한다.

잘못된 경전들을 지금 갑자기 뜯어고치기는 어렵다. 러나 실낱같은 작은 희망은 있다. 제도적으로 엄선된 존경받는 성직자들을 배출하고 이들로 하여금 독선이 아니라 포용의 설교나 강론을 함으로서 이웃을 사랑하고 어렵겠지만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인간들을 선도할 수 만 있다면 최소한 종교간의 전쟁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내 주장도 옳고 네 주장도 옳다고 포용적이 된 사람은 평범을 넘어선 인격자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내 주위의 여럿을 하나로 볼 수 있고, 그 하나를 여럿으로 볼 수 있을 때 너와 내가 결국 서로 의지하는 공생의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면 인간과 종교의 관계는 성공적이 될 것이 아닐까?

<이경림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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