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돼지머리와 북어!’

2016-08-15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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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인이 대형 슈퍼마켓을 차렸다. 개업을 앞두고 고사(告祀)도 지냈다. 액운은 막고 복을 비는 의식이다. 잘 되기를 바라고 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혹자는 미신이라 한다. 하지만 과학시대인 요즘도 개업이나 시산제 등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문화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미신적 행위보다는 사람들이 큰일을 앞두고 마음의 위안을 삼고자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사 상에는 복스럽게 생긴 진짜 돼지머리가 오른다. 요즘엔 그림으로 그린 돼지머리나 돼지 저금통이 대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돼지머리’ 고사의 우리말 의미를 설명한 내용을 찾아보니 그 이유가 그럴듯하다.

우리 민속인 윷놀이의 ‘도’는 돼지를 상징한다. 동시에 ‘시작’도 의미한다. ‘첫도는 살림 밑천’이라 한다. 모든 일은 첫 단추를 잘 끼어야 한다. 시작은 반이라 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고사지낼 때 ‘돼지머리’를 고사 상에 올려놓았다. ‘시작머리’부터 일이 잘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돼지’는 ‘도야지’라고도 한다. 이 말은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돼야지’와 발음이 비슷하다. ‘돼지’ 역시 일이 잘 되어가는 상태를 일컫는 ‘되지’와 비슷하다. 그래서 시작은 물론 앞으로도 하는 일이 계속 잘 되기를 염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돼지의 한자인 돈(豚)은 우리말 돈(money)과 같은 발음이다. 일이 시작머리부터 잘 되어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듯, 돈을 많이 벌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란 것이다. 그래서 고사 때 돼지머리 주둥이에 돈을 물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돼지는 늘 꿀꿀거려서 ‘꿀꿀이’라고도 한다. 자연스레 단맛의 꿀이 유추된다.

틈만 나면 꿀맛 같은 단잠을 자기 때문에 ‘꿈’도 연상된다. 이에 따라 돼지머리를 신에게 바치는 매개물로 하여 이상의 ‘꿈’이 실현되는 꿀맛 같은 삶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라 풀이한다. 이야기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은 분명한 듯하다.건조된 명태인 ‘북어’도 고사뿐만 아니라 관혼상제와 일반제례 등에 빠지지 않고 올려 진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육지생물로 ‘돼지’를, 바다생물로는 북어(명태)를 통해 천신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북어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물로써 제물로 바쳐졌다. 인간의 제액을 대신 받는 액막이 역할을 맡아 온 것이다. 예전에는 천지신명에게 바치는 신성한 음식은 어느 한군데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북어가 고사에 올려졌다. 명태는 한 부분도 빠짐없이 다 먹을 수 있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말린 후에도 눈과 머리가 뚜렷해서 제 모습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개업한 업소에서 고사가 끝나면 제물로 올린 북어를 실타래에 매달아 문 위에 올려둔다고 한다. 그것은 북어의 밝고 큰 눈과 쫙 벌어진 입으로 업소에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한다.

고사에는 막걸리, 시루떡, 실타래 등도 올려 진다. 고사 술에 막걸리를 쓰는 것은 전통이다. 손님이 막걸려 들어와 술술 일이 잘 풀리고 돈이 많이 벌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시루의 솥은 한 소속을 의미한다. 시루떡은 겹겹이 쌓인 떡이다. 떡은 큰 덕(德)에서 온 말로 사랑과 덕을 뜻한다. 사랑과 덕은 나누어야 한다. 떡을 나누어 먹는 이유다. 시루떡은 사랑과 덕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덕을 쌓아 한솥밥을 먹는 식구(사업, 장사, 회원 등)가 많아지도록 일이 잘 되라는 의미다. 시루떡의 팥고물은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는 치우천황의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잡귀를 막아 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참으로 경기가 안 좋다. 불황이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날로 휘청거리는 업소는 늘고 있다. 비틀거리다 못해 넘어지기도 한다. 하루하루는 급변하고 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 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니 액운을 피하고 안녕을 바라는 마음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되길 원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다. 그렇다고 고사를 지내란 말은 아니다. 기존업소나 신규업소나 불황에 움츠리지 말고 꿋꿋하게 밀고 나가자는 말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업소나 신규업소 더불어 개업을 준비하는 업소까지도 불황에 아랑곳하지 말고 ‘대박 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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