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運七技三)이 맞나 기칠운삼(技七運三)이 맞나. 인생의 연륜이 쌓일수록 실력보다는 운이라는 쪽으로 보는 경향이라고 한다.
정치인으로서의 박근혜의 경우도 그렇지 않을까. ‘선거의 여왕’으로 불려왔다. 그러니까 정치적 기술, 리더십이 탁월하다고 보아야한다. 그러나 대통령 박근혜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무엇보다도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운이 따른다. 박근혜가 맞아온 정치적 주요 고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2012년 대선도 그랬다. 좌냐 우냐 양자택일의 코너로 몰렸다. 그 절박감은 우파를 결집시켰다. 거기다가 ‘나꼼수’ 등 좌파 측의 결정적 에러가 등장했다. 투표결과는 51.6% 대 48%. 천운이라고 할 수밖에.
이후의 대소선거에서 박근혜의 새누리당은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박근혜 정부의 업적이 뛰어나서였나. 아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발목이 잡혔다. 거기다가 터진 게 메르스 사태다. 그런데도 선거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
종북의 덫에 갇혔다. 그게 야당의 모습이다. 거기다가 김정은도 한 몫 거들었다. 걸핏하면 핵에, 미사일에, 지뢰도발까지 해왔다. 꾀나 못난 야당에, 날뛰는 소년독재자. 그게 정치적 호재 역할을 한 탓이 더 크다.
그런데 ‘운이 따른 후’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해프닝이 발생한다. 기고만장한 탓인지. 이것 역시 박근혜 정부가 보여 온 일종의 묘한 정치패턴이다. 그건 다름 아닌 ‘박근혜의 남자’가 나대는 해프닝이다.
2014년 연말 정가를 강타한 정윤회사태가 그것이다. 이 사건으로 문고리 3인방, 다시 말해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박근혜 남자들의 그 무소불위의 힘, 그리고 막후의 파워게임이 노출되면서 박근혜 정부는 국정동력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했었다.
박근혜의 남자가 또 다시 나댄다.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골수 친박(親朴) 이다. 그런 윤상현 의원이 당 대표를 죽이겠다고 한 발언 녹취록이 공개된 것이다.
나대기는 또 다른 대통령의 남자 이한구 공천관리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공천관리위원장은 당 최고위원회가 추대한 임명직이다. 그 임명직 권력이 전당대회에서 뽑힌 선출직 권력인 당 대표를 누르려 든다. 정당민주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믿고 이들은 제멋대로 나대고 있나. 대통령의 확고한 뜻이다. 대통령이 싫어한다. 기피인물인 것이다. 그런 인물의 공천은 막아야 한다. 그게 당 대표든 누구든 상관없다.
그 추측을 더욱 신빙성 있게 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대구 나들이다.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주셔야 한다.” ‘자신을 배신한 것으로 점찍은 유승민 의원과 그 일당’을 겨냥해 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에 한 발언이다. 그리고 11월에는 ‘진실한 사람 선택’을 강조했다. 그 말을 되살리려는 행보가 대구 나들이인 것이다.
‘당 대표를 죽이겠다’는 윤 의원의 발언도 그렇다. 그 배경은 자신을 배반한 당 대표가 대선후보로 나서는 것은 결코 볼 수 없다는 대통령의 의중에서 찾아진다는 거다. 대통령의 뜻은 이처럼 확고하다. 그 뜻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 친박, 진박(眞朴)에게 맡겨진 정치적 소명(?)이다. 결국 각본이 짜여 진다. 공천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거다. 그 보이지 않는 손, 공천개입 기획자는 다름 아닌 청와대라는 설이 그래서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뜻과 다르면 배신이고 진실하지 않다’-. 이 논리의 출발점은 어디서 찾아지나. 박 대통령이 안고 있는 ‘배신의 트라우마’라는 지적이다. 권력의 중심부에 서 있다. 그러다가 권력에서 밀려나자 사람들이 등을 돌린다. 그 때의 쓰라린 배신의 추억은 깊은 상처로 남기 쉽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릴 때 그 경험을 했다. 그 정신적 외상이 일종의 콤플렉스로 변질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적지 않은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그 콤플렉스가 열등 콤플렉스에 빠지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다. 우월 콤플렉스로 넘어가면 타인을 파멸로 이끈다.
박 대통령은 항상 내가 옳다는 의식에 자신의 선의와 원칙을 지나칠 정도로 앞세워왔다. 때문에 나와 뜻이 다르면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때로 복수의 다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대통령의 의중에 민감한 반응을 한다. 대통령에 충성스러운 ‘진박’을 영남지방에서 대거 당선시키면서 대통령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거다. 박근혜의 남자들의 생각인 모양이다.
문제는 선거 민심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본향 대구의 여론도 심상치 않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도권에서는 전멸이고 과반선 확보도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박근혜의 남자들이 마구 나댄 결과다. 고비 때마다 따라준 운, 그 정치적 행운은 4.13총선에서도 작용할까. 아직은 두고 볼 일 같다. 김정은 변수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나 어딘지 감이 흐린 느낌이다. ‘이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고 싶지 않다’는 한국인이 62%에 이른다는 여론조사결과는 선거 민심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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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