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크마가 구입한 안영일의 대작‘물’을 지난 9월말 수장고로 옮기기 위해 라크마 직원들이 스튜디오에서 패킹하고 있다.

배우 하정우가 LA에서 그린 작품.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의 지연수 큐레이터가 박수근의 작품‘귀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5년 문화계를 돌아보는 작업은 녹록치 않았다. 아날로그 식으로 지난 한해 나온 문화면을 데스크에 쌓아놓고 한장 한장 넘기며 리뷰했다. 한 주에 월·수·금 3개면씩 무려 150페이지나 된다. 기사 꼭지수로 세어보면 얼마나 될까. 엄청나게 많은 전시회, 음악회, 공연, 행사들을 쫓아다녔고, 나름 열심히 기사를 썼다. 그런데 솔직히 그 중엔 이런 걸 언제 썼나 싶게 기억조차 안 나는 전시, 공연, 신간, 행사들도 적지 않다. 기억력 탓도 있겠고, 너무 많은 정보처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감상자의 뇌리에 남을 감동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각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올해 주류 미술계 최고의 뉴스는 단연 ‘더 브로드’의 개관이다. 남가주 문화예술계의 억만장자 후원자인 일라이와 이디스 브로드(Eli & Edythe Broad) 부부가 소장품 2,000점을 대중과 나누기 위해 세운 이 현대미술관은 다운타운 활성화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물론 남가주 뮤지엄들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았다.
지난 3월 현대자동차가 LA카운티 미술관(LACMA)을 10년간 후원하는 문화예술 파트너십 ‘더 현대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도 역사적인 일이었다. 라크마가 한 기업으로부터 이처럼 장기간 대규모 서포트를 받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 한국 대기업이 미국의 미술관에 지속적인 후원을 제공하는 것도 처음이라 남가주 한인들의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 사건이었다.
라크마는 또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각계 후원자들로부터 수많은 선물과 후원금을 받았으며, 기증받은 작품들로 ‘50년을 위한 50점’ 전시를 열어 호평 받았다.
USC 퍼시픽아시아 뮤지엄(PAM)에 국민화가 박수근의 작품 ‘귀로’(Homeward Bound)가 걸리게 된 것도 빅뉴스다. 박수근이 타계 1년 전인 1964년 그린 이 그림은 박물관의 오랜 후원자 허브 눗바(Herb Nootbaar) 가족이 40년 전 뉴욕서 구입, 소장하고 있다가 기증했다.
한인 미술계에서는 안영일 화백의 화려한 컴백이 화제였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화가로 이름 날리며 한국과 미국에서 승승장구했으나 갑작스런 불운으로 수십년간 칩거하다시피 했던 안 화백은 올해 초 LA 한국문화원과 롱비치 뮤지엄에서의 초대전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 갤러리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다.
지난 10월 KIAF 국제미술제에서 ‘백아트’ 초대로 개인전을 열었던 안 화백은 한국 굴지의 현대화랑을 비롯, 시카고, 영국, 파리, 싱가포르 등지의 유수 화랑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내달 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2016 LA 아트쇼에서도 명예전 형식의 솔로 쇼가 예정돼 있다. 또한 LA 카운티 뮤지엄이 최근 안영일 대작을 구입, 내년 9월쯤 전시를 추진 중이라고 측근이 전했다.
올해 초 표갤러리 LA에서 열렸던 배우 하정우의 개인전 역시 많은 관심과 화제를 몰고 온 전시였다. 그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문화면 사상(?) 가장 많은 문의와 반응이 쏟아져 과연 스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올 한해 한인 미술계는 무척 부진했다. 역사가 오랜 사비나 갤러리가 문을 닫았고, 앤드류샤이어 갤러리가 타운을 떠난 것이 큰 타격이었다. 리앤리, 웨스턴, 파크뷰, CLU 등이 전시를 올리고 있으나 전문성과 기획력 부족으로 대관전에 치우쳐 있고, 채스워스의 프록시 플레이스와 샌버나디노의 예술사랑이 꾸준히 기획전을 열고 있지만 한인타운과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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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