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침묵의 시간

2015-11-26 (목) 01:04:53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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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빛깔을 뽐내던 나 뭇잎들이 땅에 뒹굴고 나목 이 되어가니, 이제 곧 매서운 칼바람이 날리고, 꽁꽁 얼어 붙은 대지는 흰 눈 밑에 침 묵하는 겨울이 올 것이다. 겨 울은 새 봄의 도약을 위해 조용히 정기를 축적하는 기 간이다.

한 아이가 기계소리 시끄 러운 공장에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회중시계를 잃어버 려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 아버지는 모든 기계의 전원 을 끄고 기다려 보자 했는데, 정적 후에 “재깍 재깍”나는 소리로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삶이 소란하고 바쁠 때 잠시 침묵하며 영혼 깊은 곳 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교훈으로 들린다.

사람이 태어나“ 말을 배우 는 데는 2년 걸리지만, 침묵 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 다”라는 말이 있다. 침묵은 쉽지 않다. 가톨릭의 영성 훈 련 중에는 훈련 기간 동안 전 혀 입을 열지 않는 묵상 기도 도 있다는데, 침묵에도 훈련 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토마스 칼라일은 “언어는 위대하다. 그러나 침묵은 더 욱 위대하다”라고 했는데, 항 상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 다. 침묵에는 용감한 침묵, 비 겁한 침묵, 괴로운 침묵, 그리 고 거룩한 침묵 등 여러 종류 가 있기 때문이다.

꼭 입을 열어 자기의 소신 을 밝혀야 할 때도, 후환이 두려워, 손해를 볼까봐, 또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입을 꼭 다물고 있다면 비겁한 침 묵이라 부르고 싶다. 반면에 본인이 당하는 고통에도 불 구하고, 동료나 주위 사람에 게 해를 가져오지 않도록 어 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비 밀을 누설치 않는 것은 용감 한 침묵이다.

침묵에는 또한 능동적으로 본인이 입을 다무는 것과 주 위가 고요하고, 정적이 감도 는 상태인 피동적 침묵이 있 다. 시편 13편의 기자는 응답 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하나님 께 응답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께 의인으로 불리운 욥은 이해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에 이 유를 설명 안하고 잠잠한 하 나님으로 인해 견딜 수 없이 괴로워했다.

또한 크리스천 작가로 유명 한 엔도 슈샤꾸의 책 ‘ 침묵’ 에는 수많은 일본의 천주교 신자들이 극심한 박해와 순 교를 당해도 세상은 여전히 똑같이 돌아가고, 하나님은 잠잠하신 것을 몹시 괴로워 하는 성직자의 이야기가 있 다. 이러한 침묵들은 인간이 그 침묵의 의미를 깨닫기 전 까지는 심한 고뇌를 안겨주 는 괴로운 침묵이다.

여러 침묵 중 가장 아름다 운 침묵은 아무래도‘ 거룩한 침묵’이라 생각된다. 어느 교 회의 담임목사는 교회의 여 신도와 부정한 일을 저질렀 다는 근거 없는 낭설에 휘말 려 고민하다 한 마디 변명 없 이 조용히 사직했는데, 시간 이 흐른 후에야 그 진상이 밝혀져 다시 모셔왔다는 이 야기를 들었다. 결코 쉽지 않 은 거룩한 침묵이다.

어떤 목사는 “하나님의 언 어는 침묵이며, 침묵은 하나 님을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 인의 침묵은 성화의 본질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나도 이 거룩한 침묵의 맛과 멋을 더 누리며 사는 삶을 살기를 간 절히 소원한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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