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잃어버린 줄 몰랐다.
새해 셋째 날 아침, 트렁크를 여는 순간 문득 허전함이 밀려왔다. 뮤직스탠드와 녹음스탠드가 보이지 않았다. 꺼낸 기억은 없었지만, 집에 두었겠지 하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했다. 평소라면 반드시 키를 눌러야 열리는 앞문이 잠기지 않은 채 열렸다. 차 안은 휴지가 흩어져 있고 어수선했다. 실내등은 켜져 있었고, 손끝에 닿는 온기는 누군가 방금 까지 머물렀던 것처럼 따뜻했다.
선글라스, 동전, 볼펜 등 사소한 물건들이 사라진 것보다 누군가 내 일상에 다녀갔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갑자기 두려움이 커졌다. 차에 들어가기가 조심스럽고 무서웠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시선이 내 삶의 경계 안으로 스며들었다는 사실이 깊게 남았다.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리번거렸다. 같은 건물의 주민일까, 아니면 외부인이 주차장 문이 열릴 때를 기다렸다가 들어왔을까. 여러 생각이 겹쳐왔다. 주차장 안의 차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카메라는 엉뚱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차문을 열 때마다, 차에 다가갈 때마다 작은 경계심이 따라붙었다. 일상의 동작 하나하나가 이전과는 다른 무게를 갖게 되었다. 누군가 스쳐 지나간 자리가 물건의 유무를 넘어 마음의 질서를 흔들어 놓는다. 상실은 그렇게 외부에서 시작해 내부로 스며든다.
비는 한 해의 끝을 흐리고 있었다. 2025년 마지막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재야의 종소리를 지나 새해의 첫날까지 멈추지 않았다. 축하인지 작별인지 알 수 없는 빗줄기 속에서 해의 경계가 흐릿했다. 보이지 않는 모퉁이를 비가 대신 돌아 나가는 듯했다. 시간의 끝과 시작이 분명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 나 역시 마음의 경계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 있었다.
새벽, 에어컨 덮개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며칠째 내리는 비 때문인지, ‘도대체 누구였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남자였을까, 여자였을까. 어느 시간에 차 문을 열었을까? 일어나 있어도, 누워 있어도 그 질문이 머리 한쪽을 잡아당겼다. 상실은 이렇게 반복적으로 되돌아와 마음을 건드린다.
사라진 물건은 다시 사면 된다. 그러나 마음의 평온과 일상의 안정감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잃어버린 뒤에야 비로소 지키고 싶었던 것들이 선명해진다.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라는 뒤늦은 깨달음이 따라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빈자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감사가 스며들었다. 차에 필요한 서류와 보험 카드는 그대로 있었다.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다. 물건을 가져갔지만, 최소한의 배려는 남겨두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감사했다.
감사는 상실을 대신하지 못한다. 상실은 상실대로 아프다. 그러나 감사는 상실 옆에 놓이는 작은 상자 같다. 완전히 채워주지는 못하지만, 잠시 숨을 고를 자리를 마련해준다. 상실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것은 때로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조용한 감사다. 상실은 언제든 찾아오지만 상실 옆에 놓인 작은 감사의 상자를 열어보는 일은 여전히 우리 몫이다.
나는 물건을 잃었지만, 남아 있는 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우리는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은 뒤에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새해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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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