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만년 전 호수 물결,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듯

2015-10-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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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계곡’

▶ 메마른 암석과 뜨거운 사막

천만년 전 호수 물결,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듯
가장 뜨겁고 낮은 곳 데스밸리

최근에 개봉한 영화 ‘마션’의 배경과 흡사했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같은 척박한 행성의 거친 표면과 꼭닮았다. ‘데스밸리’ (Death Valley)는북미 대륙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낮은 곳이다.‘ 죽음의 계곡’이란 삭막한이름 그대로 극한의 기후 속 메마른암석과 뜨거운 사막이 펼쳐져 있다.

베이커스필드에서 새벽같이 출발해 4시간 여 황무지길을 달려 마침내이른 데스밸리 국립공원 입구. 차문을 열고 나오니 오븐 속에 들어온 듯했다. 몸이 금세 반응한다. 목이 탔고건조해진 눈이 쓰려온다. 빨리 도망가고만 싶었다. 불시착한 행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데스밸리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과 지구상 가장 뜨거운 곳을 놓고경쟁을 벌이는 곳. 1913년 7월 13일데스밸리의 기온은 56.67도를 기록해,9년 뒤 사하라에서 57.85도가 관측되기 전까지 최고 기록을 보유했었다데스밸리의 배드워터(Bad Water)는해수면보다 85.5m나 아래에 있어 북미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알래스카를 제외하고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산(4,421m)이 불과 100㎞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것도 아이러니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를 있게 한 골드러시가 시작된 해인 1849년, 금을 좇아 온 한 무리가 시에라산맥을 넘는 대신 지름길로 택한 길이 이 데스밸리였다고 한다. 수십 일을 가도 계곡을 벗어나지 못했고 물과 식량이 다 떨어진 채 거의 죽다살았다고 한다. 간신히 이 계곡을 빠져나가면서 던진 인사말이 “굿바이,데스밸리”였다고. 그 때부터 이 곳의이름은 데스밸리로 굳어졌다.

메스키트 플랫 샌드 듄스(MesquiteFlat Sand Dunes)에서 가는 모래가산을 이룬 사구를 만났다. 듄 주변에나무토막들이 바싹 마른 채 모래에박혀있었다. 직접 불이 붙진 않았어도 서서히 숯이 되어가는 중이다.

점심을 먹으러 찾아간 곳은 사막의 오아시스인 퍼나스 크릭(FurnaceCreek). 골드러시가 한 숨 가라앉은19세기 말 이 주변에서 보랙스(Boraxㆍ붕사) 광산이 발견되면서 이 뜨거운 황무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터를 잡은 곳이 물이 솟아나는 퍼나스 크릭이다.

퍼나스 크릭의 식당에서 샌드위치로 배를 채운 뒤 남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악마의 골프코스’를 들렀다. 진짜 골프장이 아니라 악마가 아니고는 골프를 칠 수 없다는 울퉁불퉁한벌판이다. 소금결정과 진흙이 뭉쳐진덩어리들이 드넓은 평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새하얀 소금 결정을 조금 떼어 맛을 보았다. 보통의 소금 이상으로 짰다.

다음에 차가 닿은 곳은 ‘배드 워터’. 주차장 위 산 능선 중턱에 ‘SeaLevel’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해수면에서 저만큼이나 내려와 있는 것이다. 입구엔 소금물이 고인 웅덩이가있고 부드럽게 휘어진 하얗게 번들거리는 소금 길이 이어졌다. 40도가 넘는 더위에 지친 일행 중 한 명은 사막 한가운데에 소금 카펫이 깔려있는 특별한 풍경마저 마뜩지 않았는지 거대한 재떨이 같다고 투덜댔다.


고여있는 물은 뱉은 침이라나. 아름다운 풍경임에도 굿 워터가 아닌 배드 워터가 된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국립공원에 걸맞게 데스밸리엔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요르단의 페트라를 닮은 협곡도 있고, 데스밸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단테스 뷰’ , 산자락 암석의 색깔이 빨강, 파랑, 핑크,오렌지색 등으로 화려한 ‘아티스트팔레트’ 등이 있다.

해가 제법 기울었을 때 찾아간 곳은 ‘자브리스키(Zabriskie) 포인트’ .

바다의 파도 치는 물결이 그대로 굳어버린 양 굴곡진 언덕이 수없이 펼쳐진 풍광이다. 암석은 각기 다양한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1,000만년 전 호수였던 곳이 물이 말라붙으며 바닥의 진흙과 퇴적물이 굳었고,이를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바람이어르고 훑어 만든 풍경이다.

초현실적인 풍광은 기울어진 햇빛을 받아 더욱 그 볼륨감을 키웠다. 발음하기 힘든 자브리스키란 이름의 유래는 조금 허탈하다. 풍경에서 모티프를 잡은 게 아니라 보랙스 광산을하던 회사의 부사장 이름에서 따왔다고.

유래가 시시하든 말든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풍광은 가슴을 쿵쾅 뛰게만든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빠듯한일정만 아니라면 사막의 별을 헤며이 찬란한 풍광에 기대 마냥 머물고싶었다. 정적이 도는 황량한 사막에선 벼랑 끝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 감돈다. 밤새 그 깊은 울림에 전율하고 싶었다.


데스밸리(미국)= <이성원 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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