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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 뉴욕 맨해튼, 가을에 물들다

2015-10-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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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이스트 사이드

▶ 주철건물 틈틈이 유명한 식당·재즈 공연장 등 성업

예술의 도시 뉴욕 맨해튼, 가을에 물들다
가을은 소리없이 깊어지고 있다. 나무는 가장 먼저 알고 있다. 이파리를 빨강, 노랑으로 채색하고 절정의 잔치를 벌인다. 얼마 안 가 헤어질 이별을 기리는 전주곡이다.

산을 물들인 단풍도 아름답지만,빨간 벽돌집이 늘어선 거리에 흩뿌리는 가을 나뭇잎은 가슴을 흔든다. 오직 가을이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은 도시의 가을 정취에 푹 빠지기에 그만이다. 날로 떨어지는 기온에 어깨를 움츠리는 맛도오랜 만이다. 수천 개의 얼굴을 가진 뉴욕이지만, 맨해튼의 이스트 사이드에서 만나는 가을은 그때마다 설레고 새롭다.


이스트 빌리지, 소호 스트리트, 그리니치 빌리지, 워싱턴스퀘어는 뉴욕 시의 동쪽을 독특한 정취와 아름다움으로 장식하는 곳들이다. 예술가들이 모인 곳, 구애 받지 않는 창작의 자유가 허용되는 곳, 어쩌다 찾아 온 여행객도 어쩌면 생애 유일하게 인생의 멋에 침잠할 수 있는 곳,바로 뉴욕의 이스트 사이드다.

10월의 끝자락에 워싱턴스퀘어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살짝 차가워진 볼을 달래려 카페를 찾는다. 일대에는 전설이 돼 버린 카페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100년을 훌쩍 넘겨 버린 관록의 장소들이다. 미국의 역사가 짧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수백 년의 역사가 담긴 장소가 고스란히 살아, 현대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장면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더구나 19세기부터 영업을 이어 온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릴 때 느껴지는 묘한 감흥을 잊을 수 없다. “바로 저 자리가 마크 트웨인이 매일 와서 책을 보거나 글을 썼던 곳”이라는 소리라도 들을라치면 유럽의 여느 고색창연한 카페가 부럽지 않다.

선반에 가득 찬 컵들도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디자인하고 도색한 도자기들이다. 벽을 사방으로 돌리며 이어진 각가지 모양의 타일 또한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를 단번에던져 준다.

캐주얼과 효율성이 판치는 미국같지만 뉴욕의 이스트 사이드에는 전혀 또 다른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인근의 뉴욕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의 젊은 학생들과 수많은 예술가들이 세월과 전통 속에서 젊음과 문화를 만들어 낸다. 신구의 조화, 계승과 발전이라는 구절이 이곳처럼 제대로 맞아 떨어지는 장소도 드물 것이다.

소호(Soho)는 ‘휴스턴의 남쪽’(Southof Houston)의 줄임말이다. 휴스턴 거리(Houston St.)의 남쪽에서 캐널 거리(Canal St.) 사이의 브로드웨이 서쪽 지대에 위치한데서 유래됐다. 오헨리의 그 유명한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마을이다. 이곳은1960년대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세계적인 문화의 거리로 부상했다. 화가와 작가들은 싼 값에 텅 빈창고를 렌트해 개조한 다음 창작의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화에흔히 나오는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넒은 다락방은 바로 소호의 상징이다.

화려한 건물은 대부분 19세기와20세기 초에 정성껏 지어진 고택들이다. 그린 스트리트는 소호의 중심이다. 특히 자갈이 깔린 블록을 따라가면 1869년에 1895년 사이에 지어진 소호 특유의 주철건물(Cast-ironarchitecture)이 늘어서 있다. 지금은틈틈이 유명한 식당, 바, 부티크 등이자리잡아 알고보면 화려한 거리다.

밤이면 심야 영업이 한창인 커피샵과 카페, 실험극장, 클럽, 재즈 공연장등이 성업을 이룬다.


이스트 빌리지는 극작가 유진 오닐,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과 같은 유명인들이 살던 곳이다. 아기자기한예쁜 가옥들, 입구에서 바라보면 신비로움이 번져나오는 골목길, 가울나뭇잎이 떨어져 무성하게 쌓인 정원, 거닐기만 해도 가을이 뼈속까지 스며드는 거리이다. 특히 세인트마크스 플레이스는 샤핑의 중심가다. 이탈리아식의 아름다운 주택가로 오드리 헵번이 시각장애인으로 열연한 스릴러 영화 ‘어두워질 때 까지’를 촬영했다.

젊은이의 거리인 워싱톤 스퀘어(Washington Square) 역시 어두운 역사가 빛으로 바뀐 곳이다. 1700년대후반까지는 공동묘지로 쓰였고 한때는 결투장으로 사용됐으며 공개 교수형 장소였다. 하지만 이후 건축가 스텐포드 화이트, 마르셀 뒤샹과 존슬론, 에디슨 휘튼, 미술가 에드워드 호퍼와 같은 사람들이 이 곳을 거쳐갔다. 주말이면 거리 공연과 판토마임이 벌어지고 가을이면 어김없이 야외전시회가 펼쳐진다.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는 저항과 자유를 품고 있다. 한때 히피족과 펑크족들이 몰려들어 지금의 언더그라운드 분위기를 형성했다. 러시아,티베트,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등의전통레스토랑이 운집해 비싸지 않은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대륙 횡단 철도사업으로 유명한 쿠퍼가 저소득층 자녀 교육을 위해 세운 ‘쿠퍼 유니온’은 마크 트웨인이 설립 축하 연설을 했고 링컨 대통령이 “옳은 것이 힘"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 장소다.

머천트 하우스박물관은 부유한 상인 시베리 트레드웰이 100년 가량 살았던 집이다. 가구와 생활용품 등이그대로 보존돼 옛 뉴요커의 생활 양식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가을 낙옆 위를 걷는 여유는 특별한 사치가 아니다. 외면하는 사람에게는 떨어진 이파리가 쓰레기일 뿐이지만, 애써 찾는 영혼에게는 현재의시간을 가장 의미 깊게 지내는 충만한 기회를 제공한다. 뉴욕의 동쪽에는 가을에 젖기 아주 적당한 거리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글= <유정원 객원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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