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 자신의 해방

2015-08-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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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해방은 풀 해(解)와 놓을 방(放)을 쓴다. 무엇으로부터 풀려 놓이는 것이 해방이다. 8.15를 해방 기념일로 축하하는 것도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풀려 놓인 날이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차원이 아니라도 개인에게도 해방이 필요하다. 우리를 억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안다면 마땅히 그 올무로부터 풀려날 길을 찾아야 한다.

미움도 화도 나의 몸과 마음을 얽어 조이는 올무이다. 뼈에 사무치게 괴로운 일,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한 사연, 심장을 꿰뚫는 아픔, 죽이고 싶도록 화가 치미는 심정에서 해방을 받아야 한다. 곰곰이 생각하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내가 먼저 웃고, 내가 먼저 풀어지면 훨씬 쉽게 그 구덩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실천 못한 결심, 시행되지 못한 계획 등 묵은 후회에 내 마음이 얽매어 있을 수는 없다. 다행히 하나님은 새 도화지를 내주신다. 얼룩진 도화지에 연연하지 말고 새 그림을 구상하자. 새 출발이 불가능하다는 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용서와 이웃의 기대가 있기에 누구나 새 출발 할 수 있다.

남 몰래 흘리던 눈물도, 혼자서 내뿜던 한숨도, 긴 설명이 필요한 억울한 일로부터도 해방을 받아야 한다. 어이 없이 뱉은 거짓말과 느닷없이 남을 중상하게 된 실수로부터도 해방을 받아야 한다. 지난날을 후회하기보다 오늘부터 더 착하게 살고 더 정직하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구약 이야기에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어떤 여인이 등장한다. 과거로부터 해방을 받지 못하면 영원한 화석(化石)이 된다는 진리가 담겨있다. 보리스 파스퇴르나크는 ‘닥터 지바고’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쯤 무엇인가 새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로마는 끝장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수(數)의 지배가 끝나가고 있었다. 인간을 획일화하는 군대의 의무는 붕괴하고 해방의 날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뉴저지 주 크레스킬에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 스티븐 릴리스 씨를 시장은 이렇게 소개하였다. “릴리스 서장은 정확한 관찰력과 신중한 판단력을 지녔습니다. 그는 이 마을의 아이들과 노인들까지도 많은 걱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정말 좋은 경찰서장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프롬은 ‘현대인의 3대 새 종교’를 지적하였다. 그것은 무한정의 생산, 절대의 자유, 무한한 행복 추구이다. 쉽게 말하면 ‘많이 만들어 많이 소유하고 마음껏 즐기자’는 것이 현대인의 삼위일체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진정한 인간 해방은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버리는 데서 온다고 본다.

한국의 기독신문사가 500명의 목사를 상대로 한 조사에 의하면 사회의 교회 신뢰도가 낮다는 것이 73%, 보통이 24%, 높다는 응답이 3%였다고 한다. 교회는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54%로 다수의 목회자가 교회는 불신의 늪으로부터 속히 해방되어야 함을 희망하였다.

Religious Report 지가 미국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많고 그 이유로서 “이전에 시도해 보았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도 세계도 온통 <개혁의 소용돌이>에 들어있다. 사실 그런 외침은 오래지만 왜 해방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단순히 지배구조의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 죄를, 죄가 멸망을 낳는다는 바울의 말은 여전히 진리이다. 해방은 욕심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세균학의 개발자 루이 파스톨은 “내가 연구에 바친 시간보다 내 학설을 의사들에게 납득시키는 시간이 더 길었다.”고 고백하였다. 당연한 지식도 의사들의 머리를 해방시키기는 무척 힘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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