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8.15와 아버지

2015-08-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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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박(전 뉴욕시 민주당 22지구 대표)

8월15일 광복절인 오늘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49제가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으니 작고하신 아버지의 지난 삶이 회상된다.

아버지께서는 2대독자 외아들로 2명의 여동생과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나 만19살 청년 시절에 해방을 맞이해 붉은 공산 사회주의 물결이 이북을 뒤덮을 때 민주주의 사회가 대한민국의 살 길임을 공표하며 공산 사회주의 세력과 맞서 싸우셨다.


하지만 소련군의 도움으로 이북이 공산화되어 가자 1945년 11월23일 신의주 학생 의거를 주도 하셨다. 공산당들은 의거하는 학생들에게 기관총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해 수많은 학생들을 사살 하였다. 이때 가담한 아버지의 큰 여동생도 목숨을 잃었다. 공산당들이 아버지에 대한 체포 수색망을 좁혀 오는 도중 잡히면 공개처형이라는 절박한 상황에 아버지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비밀장소에서 부모님 계신 곳을 향하여 큰 절을 올리고 수색 올가미를 벗어나 월남 하셨다.

그 후 서북 학생 총연맹, 대한 반공 학생 총연맹 대표로, 신의주 반공 학생 의거 사단법인 창설자로, 대한민국 반공 학생의 날 창립자로 활약 하시다 1973년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이민 오셨다. 내가 8살 무렵 깊은 겨울밤 아버지께서 목 놓아 우시는 바람에 온 가족이 모두 잠에서 깬 일이 있는데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꿈을 꾸셨다며 소리 내어 목 놓아 우시는 것 이었다.

아버지는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신 것이다. 말년에 아버지께서는 친할머니께서 살아 계시면 109세라고 하시며 “오마니 한번 뵙고 죽어야 하는데...”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곤 하셨다.

조국의 자유와 후손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한줌의 주검으로 불살랐던 투사 동지들을 항상 그리시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늘 조국을 위해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 반공투사와 순국선열의 영정 앞에 발전한 조국의 영광을 돌리셨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새벽을 맞이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뒤를 이어 받은 우리는 발전한 자유 민주주의의 조국이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아버지를 보면 태극기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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