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를 찾아가는 길

2015-08-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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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에 이끌려 5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뉴욕 맨하탄 음대로 유학을 와 공부를 마치고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던 나는 평생을 피아노 치는 일 이외에는 어떤 일도 해 본적이 없는 그저 피아노만 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피아노 치는 일은 나 자체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연주 준비에 따르는 무리한 연습 양으로 인해 어깨, 등 근육 그리고 신경에 문제가 생겼고 미련하게 고통을 참아가며 연습을 하다 결국에는 팔에 마비가 오면서 피아노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전문가로서는 피아노를 칠 수 없는 낙오자,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어깨고통 보다 더 이상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사실은 지옥이었고 음악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무의미 했다. 부모님께서는 한국으로 귀국 하라고 생활비를 끊어 버리셨고 나는 뉴욕에서 이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치며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주체가 배제된 매일 매일의 지겨운 나날들을...

이렇게 방황을 하던 중 남편을 만나 33살에 결혼을 하여 두 딸을 낳고 가정주부로 살림만 하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위로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남편의 권유로 뮤지엄 사이트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림들을 보다가 그림 속에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의 가슴 벅참 이란 무대 위에서 연주 중 느끼는 그것과 똑 같았다.


이때부터 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사이트에 들어가 그림을 보고 미술사를 읽고 그림에 매치되는 음악들을 떠올리기 시작했고 주변에 미대생들이나 전공을 하고도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진 지인들을 모아 장소를 빌려 전시회를 열어주고 오프닝에는 어린 아이들의 연주회를 함께 했고 나도 무리가 가지 않는 가벼운 곡들을 연주를 하기도 했다. 드디어 나에게 꼭 맞는 일을 찾은 것 같아 너무도 기뻤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미대 교수이자 미술평론가이며 갤러리 디렉터이고 국제적인 전시를 기획하는 전문 큐레이터를 만나게 되었다. 그분 밑에서 전문적으로 전시기획을 배우게 되었지만 주변에서는 모두 나이와 전공을 들먹이며 나를 말렸다.
그러나 38살이란 숫자는 나에겐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니었다. 말리던 분들의 부정적인 말들이 오히려 오기가 생겼고 아이들이 어려서 엄마 손길이 많이 필요 할 때라 힘들었지만 힘들다는 건 나에게 있어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늦둥이를 갖게 되어 배가 부른 막 달에도 작품을 걸고 조명을 만지기 위해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몸이 힘들어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건 내게는 사치일 뿐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 디렉터는 나를 너무도 잘 이끌어 주었다. “네가 책임질 수 없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작가를 보호할 수 없다면 그 전시는 하지 말아라” 라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었고 지금까지도 큐레이터로써 나의 좌우명이다

나의 전시회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로서의 10년, 실수와 실망도 많이 했었지만 그보다 감사가 더 많았고 기쁨이 더 크기 때문에 일이 즐겁고 열정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것 같다.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와 성가대 반주를 할 때면 나는 이런 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게 해주시고, 주신 능력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도 너무도 감사하다.

나는 나를 찾아간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행복 할 수가 없다. 이젠 또 길을 잃는다 해도 좌절하거나 두렵지 않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이 내겐 있으니까.

고수정<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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