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래 된 것의 소중함 - NAKS와 TEANECK

2015-08-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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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경희대 명예교수/ 경영학박사)

남녀노소, 직업, 종교, 신분, 출신지역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일까, 한국에서는 야구장이나 공연장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미국에서 생각나는 곳은 아무래도 여기 밖에는 없을 듯하다.

대도시를 순회하며 해마다 한여름 7월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미국 내 1,000여 개 한국학교 교사들의 총회, NAKS(재미한국학교협의회) 학술대회가 열린 곳은 티넥(Teaneck, NJ)의 메리어트 호텔이다. 1993년, 11회 뉴욕대회 이후 22년 만에 이 지역에서 열린다고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국에서 모인 600명 넘는 교사들이 2박3일의 일정을 함께 했다.


행사장에서 윤정수 선생님을 만났다. 중서부의 에버그린 한국학교 교사로 40년을 봉사하고 유일하게 40년 근속상을 받는 분이다. 주중엔 생업에 종사하다가 황금 같은 토요일에 학교에 나와 볼런티어로 봉사한 기간이 자그마치 40년이라니...ㅜ 30년을 근속한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정말 작게 느껴졌다. 이 분 외에도 30년, 25년 근속상을 받는 선생님들이 모두 열 분이고 20년 근속교사들도 스무 분이나 시상대에 섰다.

‘미래를 향한 창의적인 차세대 교육’이란 대회주제에 걸맞게 다양한 강의주제들이 사흘 동안 펼쳐졌다. 한국의 역사 문화 예술교육을 필두로 한국어 교육과 효과적인 교수법 개발,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과 독도문제 등 시사성 있는 주제들이 분반강좌를 통해 골고루 다뤄졌다.

백범(김구)일지 감상문시상과 나의 꿈 말하기대회 시상식도 부대행사로 열렸다. 2004년 애틀랜타대회 이후 내가 맡아온 강좌는 일관되게 한국 차에 관한 것이다. 금년 제목은 ‘한국 차의 미학.우리 차에 대한 궁금증’이다.

한인2,3세들에게 전통문화를 가르칠 때 우리 차 문화도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여덟 번째 참가로 이어졌다. 강의 진행과 함께 행사장 한편에 열어 차를 대접하던 ‘낙수다방’을 금년에는 열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다방을 다녀간 교사들이 이를 기억하고 있고 성바오로정하상한국학교(천세련 선생님)와 사랑한국학교(홍태명 교장선생님) 등 다도교실을 여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고무시켜 준다.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 발견하는 다촌(茶村), 다전(茶田) 등 지명은 예전부터 차와 관련이 있던 곳이다. 행사가 열린 TEA NECK(티넥) 역시 차(tea)와 어떤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2002년 페어리디킨슨대학(FDU)에 교환교수 자격으로 한 해를 머물면서도 지명의 어원을 밝혀내진 못했지만 이곳에 한국전통 차사랑회를 만들고 한국 차를 알리기 위한 작은 행보를 시작한 것은 티넥이 준 선물일 것이다.

올 봄에 발간한 ‘그리움의 차도’란 산문집에도 티넥에 대한 오랜 그리움을 실어놓았다. “편안하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덕(德)이 아니고 덕 아닌 것으로 오래 지속되는 것이 없다”고 장자(莊子)는 말한다. 차를 마시는 습관도, 한국학교교사로서의 봉사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해를 거듭하는 이들의 헌신을 통해 아이들이 한글을 깨치고 애국가와 미국국가를 함께 부르며 한민족의 뿌리가 고구려와 발해까지 뻗쳐있음을 깨달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인연의 땅, 티넥에서 열린 NAKS 대회를 다시 찾으며 오랜 것이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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