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8.15와 역동의 코리아

2015-08-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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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21세기 한국의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백성들이 아니다. 오랜 기간 억압된 욕망의 분출구를 한없이 자유자재로 터뜨리고 있고, 이 욕망의 에너지는 지난 반세기 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던 나라를 오늘날 역동적인 국가로 바꾸어 놓고 있다. 이 폭발적 에너지가 대한민국을 세계경제 대국 제12위권에 진입하게 만들었다.

‘역동’이라는 단어는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의 국민들이 세계 사상 초유의 거리응원을 하면서 마침내 4강에 진입하는 신화를 만들어내면서 새삼 대두되기 시작했다. 온 국민이 잠재된 능력을 스스로 발굴하면서 뜨거운 기를 모아 함께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노래하면서 나온 열정과 도전의 대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더 이상 가난한 나라, 강국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자유로운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슴속에 꼭꼭 숨겨져 있던 욕망의 분출구를 마음껏 터뜨렸다. 이때 터져 나온 국민들의 열기와 함성은 세계속에 ‘다이내믹 코리아’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난에서 탈출하려는 욕망과 뜨거운 교육열은 폐허의 한국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도 많이 양산해 놓은 것이 사실이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세월호 참사 등으로 수백 명씩의 사상자를 낳은 것은 한국이 점점 더 빨리 성장하기 위해, 욕망의 수위를 높여가다보니 나온 결과이다. 세계 1위인 이혼율, 자살률, 음주율 등은 국가적으로도 망신 스럽다. 경이로운 경제적 성공에 비해 삶의 질 또한 세계 178개국중 102위에 속한다는 기록이다.

해방 70년, 분단 70년을 맞으면서 되짚어본 한국의 현주소다. 아직도 피맺힌 한과 상처를 싸안고 살아가는 동족과 이산가족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 처절한 과거역사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너무나 안일한 사고에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산야마다 골목마다 서린 조상의 피 냄새, 신음소리를 생각하고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참혹하게 죽어간 수많은 선조들의 희생을 돌이킨다면 이처럼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될 일이다.

유대인들은 2차 대전의 수난을 발판으로 잃어버렸던 나라를 다시 세웠다. 그들은 독일의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는다’며 뼈아픈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겼다. 한국민족은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굴절된 과거의 역사는 잊지 말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 36년간 저지른 한국인들을 600만 명 이상 전쟁터에 끌어가 죽이고 생매장해 죽이고 불태워죽이고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고 가 능욕하고 죽였다. 또 6.25전쟁을 일으켜 한반도를 피로 물들이고 국토를 유린한 북한은 지금도 호시탐탐 남한을 위협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가 분단 상황에서 지난 세월 겪어낸 고통과 슬픔이 얼마인가를 생각한다면 이번 해방과 분단 70주년을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이다.

독일의 히틀러는 ‘독일민족의 피는 하나’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유일한 분단민족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인가. 역사를 망각하고 사는 민족은 제아무리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라도 미래가 없다고 하였다. 오늘이 있기까지 몸과 마음을 던져 희생한 선각자들의 공적을 기억한다면 땅도 민족도 반으로 분단된 미완의 해방을 다시 완성으로 만드는 제2의 8.15통일을 향해 온 국민이 일사분란하게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한국민족만이 가진 역동적 에너지를 다시 승화시키는 길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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