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를 부탁해

2015-08-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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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목사)

유대계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독서를 너무 많이 하면 주관적 사고와 창의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하였다. 물론 교육은 모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이러한 모방교육 속에서 자기 창작을 요구하는 영역이 특히 예술이란 카테고리일 것이다.
표절(剽竊)이란, 남의 시나 문장을 훔쳐 자기 것인 양 발표하는 행위이며, 인용(引用)이란 다른 글에서 한 부분을 끌어다 쓰는 행위이다. 즉, 논문에서도 ‘ibid(참고)’로 각주(脚註)로 많이 쓰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란 소설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떨친 신경숙씨의 표절논란을 보면서 참으로 착잡한 감정을 금할 길이 없다. 그녀의 글이 표절인지, 인용인지 그 구획설정에 대한 것보다, 또 다른 하나의 생각은 현대인의 두뇌는 다 대동소이하다는 관점이다. 그래서 비슷한 음율, 문장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고하고 표현하고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고 허용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란 윤동주의 서시 문장도, 인생의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죽음을 고민하고 사유하는 시인이라면 한번쯤 윤씨와 같은 비슷한 문장이 나올 법도 하다는 관용이다. 그녀의 표절을 의도적인 양 적출해 내어, 고발하고 폭로하는 한국문학평론계의 저의는 어디에 있는가란 강한 의문을 제기해 보는 것도 필자의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1816년 베토벤의 작품을 음해하던 롯시니가 유명한 ‘피델리오’를 악평하며 ‘쓰레기 같은 작품’으로 폄하한 심리저변엔 평론이란 가면 뒤에 감춰진 또 다른 얼굴 질투 때문이었다.

예수가 죄인 삭개오의 집에서 유하시다 나오니, 많은 유대인들이 돌을 들고 예수께 물었다. “선생이라면 이 여자를 어찌 하겠소?” 할 때 예수는 “그녀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하니 “저 여자가 당신의 글(요19:26)을 표절(도적질)하였소! 이런 여자를 모세의 율법에는 돌로 치라 하였소!“ 예수는 그때처럼 심판하셨다. ”너희들 중, 학창시절에 컨닝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자가 돌로 치라!“ 하니 양심에 가책을 받아 다 흩어져 버리고, 예수와 여자만 남았다.

율법은 자칭 의인들이 모여 있는 순수문학 속에 있었고, 복음은 죄인들이 숨어있는 통속적 대중문학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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