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없으면 무사태평!

2015-08-08 (토)
크게 작게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형제들끼리 오순도순 서로 도와가며 사이좋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태어난 형제자매만큼 가까운 사이도 없다. 부모는 갈라서면 남남이지만 형제자매는 갈라서도 남남이 아니다. 디엔에이(DNA), 즉 피가 같아서 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난 뒤에도 절대 남남이 될 수 없는 관계가 세상에 둘도 없는 형제자매 관계이다.

고려사(高麗史) 열전 권34, <효우(孝友) 정유전>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고려 공민왕 때의 일로 어느 형제가 길을 가던 중 아우가 금덩어리 두 개를 발견하고 하나를 형에게 주었다. 양천강에 이르러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는데 아우가 금덩어리를 갑자기 강물에 던져 버렸다. 형이 이상히 여겨 아우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우가 대답하기를 “내가 그동안 형을 매우 사랑하였는데, 지금 금덩어리를 나누고 보니 갑자기 형을 미워하는(죽이고도 싶은) 마음이 생겼다. 따라서 금덩어리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차라리 강물에 던져 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버렸다”고. 이에 형도 금덩어리를 양천강 깊은 강물에 던져 버렸다. 둘은 다시 사랑을 찾았다.


이 문헌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0, <경기도읍지>등 여러 문헌에 나와 있고 중국 명나라 진요문이 편찬한 <천중기> 권50, <금불상물>엔 조선에서 중국에 영향을 준 설화로 기록돼 중국 사람들에게도 퍼져 있다. 금덩어리를 버린 아우의 용기와 그 용기를 통해 형도 금덩어리를 버리고 다시 효우하게 됐다는 고사 중 일부다.

형제의 난. 롯데가의 차남 신동빈씨와 장남 신동주씨, 그리고 장남을 편들고 있는 아버지 신격호씨의 가족 전쟁은 코메디를 방불케 하며 연일 언론의 주요 이슈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룹을 차지하려는 세력·권력다툼과 물질(돈)이 연계돼 있음이 분명하다. 93세의 신격호 총괄회장의 모습이 너무나 안돼 보인다.

8월6일, 한국거래소에 의하면 롯데 형제의 난으로 롯데 주가가 곤두박질을 쳐 2조원이 증발됐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이젠 한국정부가 롯데 형제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나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양천강에 금덩어리를 던져 버린 두 형제의 이야기를 신동주와 신동빈이 알고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오지 않았을텐테.

그러나 금덩어리 수천수만 개를 지닌 재벌들의 형제들에게는 금덩어리 두 개의 이런 고사조차도 웃음거리에 불과하겠지. 재벌가 형제의 난은 롯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동안 한국의 재벌들이라고 꼽히는 가문들에서는 필연적으로 있어 왔던 하나의 해프닝들이다. 열거해 보면 현대, 삼성, 금호, 두산, 효성, 한화 등 너무나 많다.

형제의 난 중 두드러지게 역사에 남아 있는 난이 있다.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조선 초기에 일어났던 왕자의 난이다. 태조인 이성계가 무명 장수시절 본처(한씨)에게서 난 아들 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이 조선 개국 후 강씨를 왕비로 책봉해 낳은 방번, 방석(왕세자)을 죽여 버리는 1차 왕자의 난이 있고 또 2차가 계속된다.

이방과가 정종으로 즉위하자 방원은 그를 압박하여 자리를 양도받으려 술수를 쓴다. 이에 격분한 형제 방간이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방원에게 제압되고 방원이 정종의 뒤를 이어받아 태종이 된다. 이렇듯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조선 초기에는 왕자들의 난으로 형제간 혈육도륙이 세를 이루어 피를 흘린다.

무엇이 형제를 이간시키는가. 돈과 권력과 세력장악이다. 차라리 가난하다면! 없으니 서로 재산과 권력을 놓고 다툴 이유가 없다. 없으면 무사태평(無事泰平)이다. 왕자의 난도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형제들을 서로 죽고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형제들끼리 서로 오순도순 살아가며 즐거운 생을 보내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