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맨하탄 스카이라인

2015-08-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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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최근, 지난 5월 1일 새로 문을 연 휘트니 뮤지엄 (Whitney Museum)에 갔다. 어퍼이스트 매디슨 애비뉴 건물을 떠나 14가 미트패킹 지역에 건축된 이 뮤지엄은 얼마나 반짝거리고 쾌적한 지, 기존의 작품들이 새집으로 옮기고 보니 이렇게 잘생긴 얼굴이었나 할 정도로 달라보였다.

8층 규모의 뮤지엄 천정은 철골 구조물을 그대로 살렸고 5~8층이 서로 통하는 테라스로 나가면 맨하탄 빌딩군과 허드슨강 풍광이 그만이고 심지어 계단조차 멋진 최신식 건축물이었다.


6층 베스트 콜렉션 전시장에는 자랑스런 백남준 선생의 1965년작 ‘마그넷 TV’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층층이 쌓인 TV브라운관에서 쉴새없이 변하는 화면과 음악 소리가 바로 앞에 놓인 제프 쿤스의 청소기 작품(수천만 달러 ?)이 무색할 정도로 시선을 끌었다.

휘트니 뮤지엄의 건물 외관은 보는 장소마다 디자인이 다른 것이 기존의 뮤지엄 이미지를 완전히 떠나있다. 뉴욕에는 요즘 이렇게 최신식 건축물이 부쩍 늘고 있다.

땅 밑이 단단한 암석으로 되어 있어 얼마든지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있는 뉴욕에 1930년대 초고층 건축 전성기가 일어난 것은 철골 사용, 엘리베이터 산업과 기술의 발달이 뒷받침되었다고 한다. 당시 개발업자들은 ‘높을수록 위대하다’, ‘1Cm라도 높게 짓자’는 높이에 대한 욕망이 대단했다.

1930년 319m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성되었다. 원래 그 높이가 아니었는데 근처에 높은 건물이 올라간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꼭대기 첨탑을 비밀리에 만든 다음 완공 바로 직전에 올려서 세계 제일의 빌딩 타이틀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불과 얼마 안되어 1931년 준공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높이 381m 102층)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지만.

인간의 경이로운 능력을 증명해주는 이 고층빌딩들은 뉴욕의 상징이다. 특히 엠파이어 빌딩과 크라이슬러 빌딩을 중심으로 한 맨하탄 스카이라인은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57가 애비뉴 지역을 중심으로 스키니(Skinny) 럭셔리 빌딩들이 올라가면서 맨하탄 스카이라인이 망가져가고 있다. 땅은 좁고 수요자는 많다보니 연필처럼 가늘게 위로, 위로만 올라가는 것이다. 완공된 건물을 보고 ‘ 바람이 세게 불면 허리가 꺾일 것같아’, ‘태풍에 유리창이 무사할까’하는 별 걱정은 안해도 된다. 강풍이 불면 물탱크 댐퍼가 바람 부는 반대방향으로 흔들려 바람의 영향을 상쇄하여 빌딩에 강해지는 풍력의 영향력을 줄인다니 그야말로 건설 기술의 발전이 놀랍다.

소유주나 세입자는 유럽에서 들여온 자재와 최고급 가구로 장식된 실내에서 사방팔방 트인 정면 유리창 너머 맨하탄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와인 잔을 기울이겠지만 이러한 레지던스 타워를 올려다보는 우리들은 참으로 눈이 피곤하다.

원래 맨하탄은 그곳에 사는 사람보다 퀸즈, 브루클린, 뉴저지, 저지시티 등 멀리 사는 사람들이 맨하탄 스카이라인의 절경을 누리는 법. 퀸즈 아스토리아 팍의 이스트 리버 강변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맨하탄 야경도 그렇다.

그런데 요즘 신축된 빌딩 몇 개가 눈을 버리고 있다. “저렇게 조악한 조명 시설을? 눈이 시리네.”, “설마 사람 사는 아파트? 주위 경관 다 망치네.” 싶어 ‘제발 전체적인 조화를 깨뜨리지 말라’고 빌딩국에 투서 하고 싶다.

지금도 고층 빌딩을 짓는 타워 크레인 수백 대가 맨하탄 지역에서 움직이고 있다. 고층 빌딩에 대한 위압감은 없다. 현대의 바벨탑이라 하여 인간의 한없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라 비난할 생각도 없다. 그저 쾌적한 전망이면 된다. 고층아파트는 전망권을 사고팔기도 하고 손실보상의 대상도 된다는데. 아무래도 퀸즈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소시민의 일조권, 전망권, 통풍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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