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상자들의 행렬

2015-08-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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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혹시 ‘행렬’의 뜻을 잘못 아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글제를 보고 의문을 느낄 것 같아 사전을 본다. 거기에는 분명히 여럿이 줄을 지어 감, 또는 그 줄, 이라고 써 있다. 결국은 독자들에게 의문이 생길 지도 모르는 이유는 행렬과 수상자가 잘 어울리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행렬을 만들었고, 보아왔다. 그 중에서도 아픈 기억으로 남는 것은 6.25전쟁 때의 행렬이다. 피난민들의 골칫거리인 이를 없애기 위해, 거리를 막고 행인들의 옷을 들추고 미군들이 DDT를 뿌려줄 때의 긴 행렬이다. 또 서울에 돌아와서 가끔 식료품을 나누어 주던 때 배급품을 얻기 위한 긴 행렬이 있었다. 이런 예를 생각하면 행렬은 어두운 면을 되살리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도 많다.


우선 뉴욕의 ‘코리안 퍼레이드’를 생각해 보자. 얼마나 자랑스러운 전통 행사인가. 얼마 전에는 미국 여자축구팀이 세계 으뜸을 자랑하는 퍼레이드도 있지 않았나. 그러고 보면 퍼레이드 자체가 좋고 나쁨을 상징하지 않는다. ‘어떤 목적의 퍼레이드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뜻을 지닌다.

필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에 뉴저지에서 열린 제33회 재미한국학교협의회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를 위한 책자를 받고 보니, 금년의 장기근속 교사의 수효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태서 두 차례로 날짜를 바꿔 행한 시상식 광경은 큰 놀라움이었다. 단상의 책상 위에 쌓여있는 상패는 산을 이루었고, 단 아래서 기다리는 수상자의 긴 행렬은 띠를 이루었다.

시상식의 모습도 특이하였다. 맨 첫 수상자의 이름과 상패의 문장을 읽었을 뿐, 나머지 수상자들은 이름만 읽기조차 바빴다. 7.8명씩 그룹이 되어 단 위로 올라갔으며 그들은 상패를 받기에 바빴다. 한 그룹씩 상패를 받고,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면, 계속 다음 그룹이 단상에 올랐다. 여러 차례 이런 형식이 계속되었다.

여기에 참가한 수상 명칭과 수상 학교와 수상자의 수효는 다음과 같다. 개교 40주년 3교, 개교 30주년 7교, 개교 20주년 12교이다. 장기근속 교사 40년 1명, 30년 5명, 25년 5명, 20년 20명, 15년 22명, 10년 48명에 이른다. 이어서 교육부 장관 표창장 수여 12명, 국립국어원 원장 표창자 7명, 국립국제교육원 원장 표창자 6명, 직지상 수여자 6명이다. 즉, 총 표창 받은 학교의 수효는 22교이고, 표창 받은 장기근속 교사의 총 수효는 132명이다.

왜 이렇게 장기근속 교사의 수효가 많은가? 왜 한국학교 교사들이 직장을 지키게 되었나? 이런 경향은 한국학교를 위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은 재미한국학교 교육의 긍정적인 성과에 도달한다. 교사들이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게 되면서 가르치는 일에 자신을 가지고 성과를 올리게 되었으며, 이런 경향이 장기근속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서 제각기 생활하고 있는 한민족이 자녀교육 방향을 명확히 하고, 교사들은 열의와 노력으로 이에 호응하는 동포사회의 분위기가 확립되었다.

이런 바람직한 분위기 조성은 한국학교 설립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동포사회 노력의 결과이다. 한동안 오직 한국 동포자녀들만을 향하던 한국문화교육의 목적이, 더 넓은 뜻을 가지게 된 것도 좋은 경향이다. 우리는 차근히 할 일을 추진하고 있다. 132명의 교사가 표창 받는 날 그 대견함이 꼬리를 물고 생각을 넓힌다.

“다음 학기에 내 친구를 데리고 와도 좋아요?” “물론이지!” “그 친구는 아프리카에서 왔어요.” “꼭 데리고 와요. 우리 친구가 늘겠네.” 방학날 우리 반 학생과 주고받은 대화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 세계를 넓히고 있다. 개인도 나라도 넓은 세상에서 많은 친구들과 같이 살 때 행복하다. 이 길이 바로 한국학교가 바라는 목표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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