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000대 1의 확률’

2015-07-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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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북한 인민군은 7개 보병 사단과 225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했다. 1950년 6월25일 새벽이다. 성난 노도와 같이 밀어닥친 북한 인민군을 막아낼 힘도 의지도 국군에겐 없었다.

맥아더는 일본에 주둔하고 있었다. CIA의 보고를 받은 맥아더는 즉시 한국으로 날아가 사면초가에 몰린 한국의 전황을 면밀히 정찰하고 돌아갔다. 맥아더는 전략의 천재였다. 질풍처럼 남하하고 있는 북한 인민군을 낙동강 하구까지 유인한 다음, 그들의 허리를 끊어 분쇄할 놀라운 계획을 세웠다.


정치인들의 외교는 거북이걸음처럼 더뎠다. 격론 끝에 UN이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승인했고, 그 후에 트루먼은 맥아더를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했다. 그때가 8월 초순이다. 하지만 맥아더는 이미 7월 2일에 인민군 보급로의 허리를 끊고, 포위하여 압살시킬 계획을 은밀하게 세워 놓았다. 그것이 인천상륙작전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합동참모본부 뿐 아니라 맥아더의 휘하의 지휘관들까지도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반대 의견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률은 5000대 1정도라고 단언했다.

맥아더의 측근 참모들조차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불리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곳이 인천항 입니다. 차라리 인천에서 남쪽으로 20마일 떨어진 포송면을 상륙지점으로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맥아더는 말했다. “본인도 인천상륙작전이 5000대 1의 도박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거대한 상륙함이 위험천만한 협수로를 통과한 후, 31피트나 되는 간만의 차이를 돌파하여 인천항에 접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도 잘 압니다. 적군도 지금 유엔군 사령관이 제정신이라면 인천으로는 상륙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천으로 상륙해야 성공합니다.”

맥아더는 지체하지 않았다. 그 다음달 9월 15일, 해병대 1개 사단을 이끌고 전격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맥아더의 생각과 판단은 옳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 확신에 허를 찌른 인천상륙작전은 상식의 틀에서 벗어난 대성공을 거두었다. 맥아더는 위대한 상식파괴자였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사기가 충천한 유엔군은 바로 서울로 진격했다. 유엔군은 끈질기게 저항하는 인민군을 초토화시켜 북으로 밀어내고, 서울을 탈환했다. 9월28일이다. 이때부터 전황은 아군 수세에서 공세로 완전히 뒤바꾸어졌다.

5000대의 1의 확률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논리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맥아더의 용기와 담대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평범함과 상식을 뛰어넘는 창의력이다.

성경에도 그런 인물이 나온다.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단숨에 넘어트린 다윗이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은 구척장신에 철갑옷을 몸에 두르고 긴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상식으로 볼 때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다윗이 뛰어 들었다.

결과는 상식을 벗어난 다윗의 승리였다. 다윗의 승리 요인은 세 가지다. 상식을 뛰어 넘는 창의력, 상대방의 확신의 허를 찌르는 의외성(意外性), 그리고 하나님 신뢰다.

당신은 5000대의 1의 불가능 돌파를 꿈꾸는 리더인가. 다윗과 맥아더처럼 상식의 틀, 안전, 자기보신의 성벽(城壁)을 과감하게 뛰어넘으라. 그때부터 당신은 위대한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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