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무와 나무 사이

2015-07-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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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인 <대학 강사>

가끔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 다 큰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결혼이나 연애일로 부모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왠지 이상해보였다. 미국은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성인이 되는 나이 16세와 맞물리면서 일단 독립된 성인으로 본인도 생각하고 부모도 아이가 경제적으로는 자립이 안 되었지만 독립된 개인으로 간주하는 때이기도 하다.

누구는 ‘empty nest syndrome’ 이라 해서, 뭔가 아이들이 떠나면 갑자기 허전해서 오는 우울증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이곳 아이들이 워낙 개인주의에 빨리 익혀지면서 부모의 자라난 환경인 집단주의와 마찰이 있는 것은 그 두 가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집안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이 원인인지는 몰라도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에 사춘기를 지나면서 부모가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아이가 집을 떠나 대학으로 가니 서운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었다. 지난 어려웠던 기간이 아마도 정 떼느라 그랬나보다 라고 위로하면서.


엄마들이 모이면 아이가 대학에 가서 얼마나 자주 집에 전화가 오는가를 서로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 아이는 매일 밤 전화 와서 오늘 뭐했는지 시시콜콜 다 이야기해서 자기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훤하다고 자랑한다. 또 누구는 3일에 한번, 누구는 일주일에 한번 전화가 왔다고 한다.
내 아이는 전화가 한 달에 한두 번 왔던 것 같았는데, 그러다보니 전화가 오면 첫 마디가 “무슨 일 있어?” 였다. 별일 있어야 전화하니까. 가끔은 전화가 자주오거나 전화를 하면 이야기가 길 때가 있었다. 그럼 백발백중 이 아이가 학교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 물론 학교생활은 공부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갑자기 만사에 의욕이 없거나 뭐 그런 쪽이다.
아이가 7학년 때 처음 뮤직캠프에 두고 오는데 아이는 혼자 얼마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기도 싫고, 도착 즈음에는 다소 초조하기까지 하더니 들어가서 또래 친구와 몇 마디 나누니 금방 친해지면서 부모가 집으로 떠날 때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흠칫 ‘오케이’ ‘바이’ 하고는…….

그러니 이야기를 돌리면 대학가서 매일 전화 오는 아이, 하루건너 전화하는 아이들은 학교에 적응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모는 부모자식 관계를 자랑하기 전에 일단 한번 걱정해 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부모에게서 떨어뜨려놓아야 하는지 생각지 않으면 부모의 그늘 아래서 크게 자라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만일 아이가 자기가 하는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부모가 눈동자처럼 지켜본다면 분명 숨 막히는 일이 될 것이다.

자녀 양육의 목표는 아이가 성장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부모와 떨어져 한 인간으로 대등하게 일어서는 일이다. 마냥 안쓰럽기만 한 것은 물론,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감정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떨어뜨려놓고 안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그랬다. 나무가 크게 자라기 위해서는 나무와 나무사이에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그 공간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마음의 공간도 같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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