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곤 아빠가 울었다!

2015-07-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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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객원논설위원>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딸. 둘 중 누가 딸들과 더 친할까. 한국 아버지들은 미국 아버지들에 비해 자식, 특히 딸에 대해서는 자식에 대한 애정 표현이 어색한 것 같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느 아버지는 딸과 함께 둘이서만 긴 여행(일주일정도)을 다녀오기도 하는 그런 아버지도 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는 흔하지 않다.

어머니와 딸은 아주 가까운 것 같다. 딸이 성장할 때에는 가정에선 주로 어머니가 딸을 보살핀다. 딸이 사춘기를 지날 때 가장 친근한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이다. 딸이 초경(Menarche·初經)을 맞이할 때에도 제일 먼저 알게 되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다. 같은 여자이기에 딸은 어머니와 더 가깝기도 하다.


딸은 시집을 간 후에도 자주 연락하는 건 어머니지 아버지가 아니다. 어머니한테는 미주알고주알 다 말한다. 아버지에겐 안 한다. 그들은 시집가서 갖게 되는 스트레스(?)를 어머니에게 다 말한다. 그리고 상담을 받으며 위로도 받는다. 딸로 자라 어머니가 된 딸들이 그 삶의 지혜를 또 딸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 여인들의 관계다.

지난 일요일인 7월19일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이랜드 메도우스 골프클럽에선 감동적인 일이 벌어졌다. 딸을 따라 캐디(골퍼의 백을 메어주고 따라다니면서 조언해 주는 사람)를 하던 프로골퍼 최운정(25)의 아버지 최지연(56)씨의 울음보가 터진 날이기에 그렇다. 이유는 최운정이 마라톤클래식에서 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경찰관 출신인 최씨는 딸을 위해 2008년부터 캐디를 맡았다. 물론 한 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한 최운정이 돈이 없어서 이기도 하다. 돈만 많으면 프로캐디를 사서 같이 다닐 텐데 그렇지 못한 형편이니 아버지가 딸을 따라다니며 캐디를 해주는 거다. 이렇게 캐디를 하면서 최운정이 세운 전적은 세 번의 준우승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날 같은 한국선수인 장하나와 같이 동점이 되어 연장승부를 벌인 결과 최운정이 장하나를 따돌리고 우승을 한 거다. 아버지와 딸이 서로 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좋았다. 아버지가 딸을 따라 캐디를 한 지 8년만이요, 대회 수로는 157번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기쁨의 눈물이었으리라.

최운정은 우승의 공을 아버지에게 돌리며 “아빠가 옆에서 ‘참고 기다리라’며 조급해하지 않도록 도와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딸이 아닌 아버지와 딸의 가장 좋은 관계의 모습을 이들은 보여준 것 같다. 아버지의 딸을 위한 희생과 또 다른 사람들의 조롱(?)까지도 참고 견딘 아빠와 딸의 승전보가 아닐 수 없다.

성경 사사기에 보면 사사(장관)인 입다와 딸의 비극적인 이야기 하나가 나온다. 이스라엘의 통치자 입다가 이웃나라 암몬족속과 전쟁을 치루는 가운데 입다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맹세를 한다. 전쟁에 이기고 평안히 돌아오게 해 주시면 돌아올 때 자신의 집에서 제일 먼저 영접 나오는 그를 번제물로 돌릴 것이라는 서원을.

돌린다는 말은 목숨을 산제사로 바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랴. 전쟁에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가장 먼저 춤을 추며 영접 나온 사람은 입다의 무남독녀 처녀 딸이었다. 입다는 딸에게 자신의 여호와에게 서원한 것을 말하고 옷을 찢고 울부짖는다. 이에 산에 가서 친구들과 두 달간 처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함을 애곡하고 돌아온 딸은 산 제물이 된다. 딸은 죽음으로 아버지의 서원을 실행하게 한 것이다.

어머니와 딸들. 친구 같고 언니와 동생 같이 가까운 관계들이다. 최운정의 아버지 최지윤씨같이 딸들과 가까운 아버지들도 있다. 아버지의 뒷바라지가 딸을 158번 만에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곤 아빠가 울었다. 입다와 그의 딸. 아버지는 통곡했다. 그러나 그의 서원을 지키라고 목숨까지 내어놓은 딸이다. 효녀 심청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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