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별을 담는 원리

2015-07-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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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종(재미한인IT기술인협회 회장)

요즘의 인터넷 시대를 반영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흔히 쓰는 용어가 하나 있는데 ‘I am short (out) of bandwidth’ 이다. 직역하자면 ‘나의 대역폭이 바닥났어’ 라고 할 수 있는데, 누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청 할 때 그 요청받은 사람이 흔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난 정말 바빠, 내가 하는 일로도 정신이 없어” 라는 말이다. 원래 대역폭(帶域幅, Bandwidth)이란 인터넷을 포함한 통신기술에서 쓰는 용어다.

요즘은 구리선이나 광섬유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유선통신기술 외에 선(線)들이 없이 무선으로 통신하게 되니 우리의 생활이 대단히 편리해졌다. 그 무선통신에서 중요한 원리가 하나 있는데 ‘대역폭과 속도의 곱은 일정하다’라는 것이다.


대역폭이란 1초당 얼마나 많은 정보를 보낼 수 있는가를 말한다. 마치 도로의 폭이 넓으면 단위시간 동안에 많은 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것처럼, 대역폭이 넓으면 그만큼 많은 정보를 단위시간에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무선통신이 되면서 통신기기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가지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통신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때 차의 움직이는 속도와 스마트폰을 통해서 전송 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곱한 것이 일정하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차의 속도가 빨라지면 대역폭이 줄어들고 속도가 느려지면 대역폭이 늘어나 많은 정보를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동영상이나 그림 같은 매체는 정보량이 많아서 전송하려면 대역폭이 많이 필요하고 문자나 소리는 정보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전송에 필요한 대역폭은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많이 보게 되면 월정 데이터 양을 넘어서 많은 통신비용이 들게 된다. 그리고 정보를 최대한 많이 보내려면 대역폭이 최대가 돼야 하고 대역폭이 최대가 되려면 결국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통신의 원리가 오감을 가진 사람에도 적용된다. 말하자면 눈은 시각통신이요, 입과 귀는 청각통신이고, 코는 후각통신이다.

미술관에서 뛰어다니면서 그림을 보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지금 말한 통신의 원리에 의하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은 삼라만상과 대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던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땅에 앉으면 빨리 걸을 때 전혀 볼 수 없었던 작고 하얀 풀꽃의 숨소리가 보인다. 빠른 젊음, 높게 오르려할 때 보지 못하던 그 꽃을 천천히 내려올 때 볼 수 있었다고 시인 고은은 고백한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 정도의 불편은 괜찮은데 요즘은 안경의 도수를 높여도 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컨퍼런스가 열리는 이곳은 우리 집과 시차가 많아서 새벽 일찍 잠이 깬다. 호텔 불빛의 소란스러움에 아직은 어두운 바닷가였지만 아마 일등성 별들 몇을 제외하고는 내 눈에 뵈지 않았다. 바닷가 끝까지 갔는데도 더 보이는 별은 별로 없었다.

산호초의 흰 잔해와 검은 용암의 끝이 섞인 곳에 보는 이도 없어 어둠을 덮고 누웠다. 누우니 하늘이 저절로 다가온다. 눈도 숨도 모아본다. 아, 별들이 꼬물꼬물 검고 흰 커튼사이로 하나 하나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대학생 때 바닷가에서 기타에 담은 만큼은 아니라도….

집에 기다리는 가족과 나눌 만큼의 별은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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