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계로 뻗어나가는 동력

2015-07-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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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공산품이 없던 시절이라 일거리가 없고, 국민의 80%이상이 농업인구였기에 보릿고개에 밥을 굶고 있는 농민의 수가 94만6,000명, 면사무소에는 쌀을 달라고 애원하는 농민들이 줄을 지었다.

사람들이 너무 굶어 부창증 때문에 걸음도 채 못 걷는 사람이 즐비했다. 병원에는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뤘다. 당시 상황은 한마디로 실의와 좌절, 굶주림과 허탈, 원망으로 가득 찼다. 이는 길고 긴 일제의 침탈, 연이은 한국전쟁으로 국가경제가 필리핀이나 태국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던 1960년대 전후 한국의 상황이었다. 일본은 이미 메이지 유신 30년에 국민소득 80달러를 돌파하고 하루가 다르게 공업국가로 발전해가고 있을 때였다.


늦었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첫 단추를 끼웠다. 삼성의 이병철이 유럽과 미국에서 차관을 유치해 공업단지를 세우고, 현대의 정주영이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 포항제철의 박태준이 제철소를 지어 한국이 처음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960년도 초 한국정부는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가서 일하는 조건으로 1억5,000만달러의 차관을 들여왔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이 그곳에 가서 일하는 동안 65명의 광부와 44명의 간호사, 8명의 기능공이 조국 땅을 채 밟지도 못하고 현지에서 사망했다. 또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이들도 광부 4명, 간호사가 19명이나 되었다.

당시 파견된 간호사들은 두려움도 모른 채 시신을 닦았고,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속에서 펄펄 끓는 지열을 온몸에 받으면서 하루 10시간 이상 일했다. 또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용사와 기술자들도 모두 오로지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온갖 어려움도 마다하고 자신의 몸을 던졌다. 영화 ‘국제시장’이 수많은 관람객을 동원하며 가슴을 뭉클하게 한 것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해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 미지의 땅에서 눈물흘린 남미이주자 애니깽, 사탕수수 밭에서 손발이 부르트게 일했던 하와이 이주민들, 야채가게, 봉제공장 등지에서 눈물의 빵을 먹으며 12시간 이상씩 일했던 미주 이민자들, 이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오늘의 대한민국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이처럼 자신은 굶주리면서도 후대를 위해 희망의 씨를 뿌렸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부강한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이다.

지금 세계 곳곳을 누비는 최첨단기기, 자동차, 선박 등은 모두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선조들이 흘린 피와 땀과 노력의 결정체다.

이제 한국은 투자의 강국으로 변모해 더욱 해외로 넓게 뻗어나가는 경제강국으로 탈바꿈했다. 가깝게는 한반도의 개성공단으로부터 유럽과 아프리카 등의 시추 및 건설사업 등으로 투자를 가일층 넓혀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정부가 남미에 투자한 사업이 46조의 투자손실을 보아 고심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를 향한 투자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남미에서 본 손실의 원인을 명확히 분석해 또 다른 실패를 막고 투자유치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눈앞의 이익을 넘어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세계 진출을 향한 노력과 추진동력, 그 속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선조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은 세계로 세계로 향하는 원동력이자 힘의 원천이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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