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베와 반면교사

2015-07-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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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편집실 부국장 대우)

인류의 소중한 문화 및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1972년 유네스코는 협약을 거쳐 세계유산을 지정해 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등재된 세계유산은 꼭 찬란히 빛나는 문화유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나치에 의한 유대인 인종학살의 현장이자 인류에 행한 극악한 범죄라는 점을 밝히는 명백한 증거”라는 이유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전쟁범죄의 사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다시는 전쟁범죄를 짓지 않겠다는 반면교사의 상징인 것이다.


이달 초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 유산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중 몇몇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며 한국은 일본이 강제징용을 인정하고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으로 더 이상의 마찰을 피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일본은 강제징용은 아니라며 발뺌을 했다. 왜냐면 결정문의 본문에도 없고 각 주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다만 첨부자료에만 ‘force to work’이라는 표현만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 한수산의 장편 다큐소설 ‘까마귀’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히시마섬에 강제로 끌려와 노역을 한 조선인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섬의 모습이 군함과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리는 하시마는 조선인이 피와 눈물 그리고 목숨을 바꿔가며 석탄을 캐던 곳이다. 제목 ‘까마귀’는 탄광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눈의 흰 자위만 빼고는 얼굴과 몸이 온통 시커멓다고 해서 서로를 ‘까마귀’라고 부른 데서 따왔다. 후에 일본어로 번역되어 ‘군함도’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이기도 하다. 그렇게 강제로 끌려와 해저탄광에서 신음하고 떼죽음 당한 조선인의 처연한 역사는 일본의 자랑스런 산업혁명 유산으로 둔갑해 버렸다.

또 어이없는 것은 산업혁명 유산 속에 아베가 가장 존경한다는 요시다 쇼인이 세운 사설학당 ‘쇼카손주쿠’도 포함되어있다. 이곳은 이토 히로부미, 태프츠 밀약의 주역 가츠라,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등 조선을 침략 지배한 계보들이 이어지는 곳이다. 한마디로 일본 제국주의 혼과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일본은 일련의 유적들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킴으로 어두운 역사를 가리고 침략과 전쟁을 정당화 시켜 전범국의 오명을 씻어내려 하고 있다. 우리에게 끝나지 않은 역사 위안부, 강제징용 그리고 독도 문제 등에 대해 배상이나 사과 없이 두루 뭉실 선을 그으려 한다.

독일은 끊임없이 무릎 꿇고 사과한다. 그리고 다시는 과거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피해자는 용서하고 치유된다.

하지만 신제국주의로 향하는 아베의 욕망을 꺾을 노력조차 않고 그저 사과할 날만 기다리는 우리도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에 자국의 역사를 왜곡시키는 동안 우리는 무슨 노력을 기울였는지... 과거의 역사에 발 묶여 현재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은 아닌지.
감정의 골만 앞세울 일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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