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탈북자들 “문화충격 딛고 이젠 주인공으로”

2014-12-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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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키아 선교회‘특별한 송년회’성탄 만끽

▶ 이민가정과 매칭 통해 교제 활성화 추진

탈북자들 “문화충격 딛고 이젠 주인공으로”

엔키아 선교회 회원들이 송년모임을 갖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람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자격을 부여받고 태어난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족쇄를 채운다. 하나님의 자녀는 두려워하고 억눌리며 포로가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해방과 자유를 선사하고 복음을 선포한다. 하나님이 지극히 낮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온 성탄절의 선물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한민족을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다. 탈북자라고도 하고, 새터민이라고도 하며, 북한 이주동포라고도 한다. 이들은 해방과 자유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식당에서 지난 21일 조촐한 모임이 열렸다. 엔키아 선교회의 송년회였다. 엔키아(NKIA)는 미국에 사는 북한인(North Koreans In America)을 뜻한다. 예수의 품 안에 모인 탈북자들이다.


“이번 송년회는 특별했어요. 오랫동안 갈망하던 게 이뤄진 셈이죠. 탈북자는 어느 모임에서도 주인공이 된 적이 없습니다. 소리 없이 앉아 있다 돌아오곤 했죠. 그러다 처음으로 탈북자들이 자리를 마련하고 손님들을 초청했어요. 스스로 주체가 돼 자신들의 목소리로 순서를 이끌어간 겁니다. 이런 자리를 꼭 갖고 싶었어요.”김영구 목사는 엔키아가 태어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6년 전 탈북 난민의 사연에 가슴을 빼앗긴 뒤 한달음으로 걸어 왔다. 본인이 중국 식당에서 배달 일을 하고 사모는 미장원을 운영하며 버텨온 길이다.

지난 4월 엔키아를 결성하면서도 임원진은 모두 탈북자들로 구성하고 김 목사는 디렉터를 맡았다. 일은 하되 전면에는 탈북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관심을 가지면 마음이 보인다고 하죠. 하나님께서 북한 사람을 향한 마음을 주셨어요. 직접 북한 사역을 하는 대신 탈북 동포를 돕는 사역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탈북자들은 고유의 문화를 이해받지 못합니다. 교회나 사회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만 들어요. 그리곤 얼마 안가 실망하죠. 타민족은 이해하려 들면서 같은 동포의 차이점은 끌어안질 않아요.”이번 첫 송년회에 내건 구호는 ‘우리도 할 수 있다’였다. 인생의 여정을 개척하고 손님이 아닌 당당한 주인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다짐이었다. 하객과 한 테이블에 섞어 앉아 동등하게 대화를 나누고 지원해 준 고마운 이웃들에게는 감사패를 전하기도 했다.

김창호 엔키아 부회장은 송년모임에서 마이크를 잡고 떨렸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사람들 가운데 선다는 게 비판을 받는 자리였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에서는 눈치가 보이고 열등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북한에서는 유일체제 안에서 규율생활만 하다 보니 교회에 적응하기도 어렵습니다. 또 교회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마음을 열고 교제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사는 지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희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거든요.”김 목사는 탈북자들이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몸은 미국에 와서 살지만 생활방식을 배울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탈북자는 감사를 모른다고들 말합니다. 문화적 차이 때문이에요. 탈북자 가정과 이민 가정을 매칭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 서로 오고가면서 삶으로 보여주면 알게 되는 거죠. 교제할 가정을 맺어주는 사역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교회와 단체들이 많이 도와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엔키아 선교회는 내년 2월 설날에 양로원을 방문해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고 3월에는 인디언 원주민 선교에 나설 예정이다. 먼저 나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이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

미국에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진 탈북자는 170여명이다. 이밖에 여러 경로로 이주한 탈북자를 합치면 모두 500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대부분 지압, 공사장, 스왑밋 등에서 일하며 신분과 자녀교육 문제로 고통을 받는 상태다. 탈북자 가정은 한인 가정과 사귐을 원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은 시간과 정성, 노력이 더 들죠. 하지만 그리스도인 가정과 관계를 맺는 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 됩니다. 제자도의 길이기도 하죠.”문의 (310)404-6219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walkingwith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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